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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자적, 한가하니 자유로운 21대 대선

강현만 시인의 <따따부따>

강현만 | 기사입력 2025/05/20 [14:03]

유유자적, 한가하니 자유로운 21대 대선

강현만 시인의 <따따부따>

강현만 | 입력 : 2025/05/20 [14:03]

   21대 대선의 한복판이다. 윤석열이라는 내란수괴가 탈당했다. 국민의힘 김문수의 선전을 기원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해괴한 정신세계와 영혼을 가진 놈이다. 온갖 무당, 주술의 세계에 사로잡힌 놈답다. 옛날 같았으면 벌써 수백 번 능지처참을 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 놈이 여유롭게 개새끼와 한강 놀이를 즐긴다. 대한민국의 만 명만 평등하다는 검찰과 법원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21대 대선은 묘하게 감흥이 없다. 그저 흘러갈 뿐이다. 내란 척결에 큰 목소리도 있지만, 이미 결론이 난 선거에 온갖 똥파리가 시끄럽다. 떡고물에 어떻게든 빨대라도 처박으려고 안달이다. 

 

   이재명은 다를 거라고 기대하는 모습들이 있다. 나에게 특별한 감흥이 없는 이유는 이 부분이다. 이재명도 특별히 다르지 않을 거라는. 노무현에 대한 기대는 없었나? 문재인은 어떻고? 지지자들은 온갖 해괴한 선전·선동으로 임기 내내 비판에 재갈을 물렸다. 결과는 국민의힘에 정권을 헌납했다. 민주당이라는 밭의 한계다. 

 

   ‘낡은 투쟁’

 

   빌어먹을, 낡은 20세기의 NL과 PD는 환한 대낮의 21세기에도 여전히 싸움질이다. 개인에 따라 조금의 편차가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NL과 PD 정서로 싸우지만, 도긴개긴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물레방아 돌 듯이 오락가락한다. 

 

   민주당 2중대라고 흉보고 싸운다. 민주당 2중대가 부끄러운지는 아는 것이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둘 다 오락가락 민주당 2중대의 모습이었다. 서로의 잘못은 반성하고 그에 맞는 비판을 제기하면 된다. 욕지거리와 비난은 굳이 보탤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감정의 골이 깊어서 메우기가 어렵다.

 

   욕지거리와 비난은 소위 말하는 적들에게 하는 것으로 그치자. 외세의 앞잡이, 남북 분단을 조장하는 세력, 자본과 권력의 주구들에게 할 일이다. 운동진영끼리도 단결하지 못하면서 어찌 세상을 바꾸랴. 인민의 이익보다 정파의 이익을 앞세우는 모습은 결코 운동이 아니다. 

 

   민주주의 기본 형식과 절차는 존중하자. 대통령 후보가 자기(지도부) 마음대로 후보 사퇴하고 다른 당의 대선 후보를 지지할 거면 당내 경선은 왜 하는가? 당원을 우습게 보지 않고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형적인 엘리트주의의 모습이다. 정당이 갖는 엘리트주의의 한계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자들이 여전히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다.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난날의 마르크스레닌주의, 김일성주의 등 19, 20세기 낡은 사상에서 변하려고 하지 않는다. AI, 인공지능 시대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 회원, 국민이 주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주인이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정치하고 다스리는 체제와 제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잘나고 똑똑한 놈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엘리트주의는 조합원, 회원, 국민이 주인이라는 정신과 제도에 반한다. 정서적으로, 사상·철학적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자세를 갖자. 조합원, 회원, 국민이 주인으로서 통치하고 정치하고 지배하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이해를 높이자. 노력하자.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통반장, 주민자치 위원, 방범, 바르게, 새마을 등 뭐 하나라도 해보자. 거대 담론이나 고상한 일만 찾으려 하지 말고, 대중(마을) 속에서 일하고 겪어보면 운동권(노조, 시민단체)끼리 노는 일이 참 편했구나 하고 실감할 것이다. 

 

   ‘휘고 힘들어도 결국은 민중이 정리한다.’

 

   역사의식은 민중이 주인임을 올곧게 인식하는 일이다. 민주당, 국민의힘이 또는 모자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장관, 판검사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 같아도 그 기저를 보면 결국은 민중이 움직이고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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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의 머슴 말마따나 개인은 그러니까 왕이든, 장군이든, 대통령이든 누구든 도도한 강물의 돌멩이에 지나지 않는다. 설핏 보면 어떤 개인이 뭐를 대단히 해내는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가 한 일은 그 시대의 요구, 민중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그렇다고 한 개인의 역할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의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인물 사관, 영웅 사관에 빠진 ‘빠’, ‘좀비’의 행태는 반역사적 인식이자 반헌법적 노예 의식이다. 민(民)이 주인 되는 사례는 2,500년 전 그리스 민회부터 동학의 집강소, 스위스 등 많은 국가와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다.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 국민투표제 그리고 추첨제, 보충성, 연방제(네트워크) 등 ‘마을공화국’의 실질화에 있다. 

 

   이제 우리가 좀 더 지혜롭고 헤쳐 나가야 할 일은 조합원, 회원, 국민이 실질적인 주인으로서 통치하고 정치하고 운영할 수 있는 조직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 국민투표제 그리고 추첨제, 보충성, 연방제(네트워크) 등 직접민주주의다. 헌법과 법률은 이에 복무해야 한다. 

 

   내란 수괴를 받들고 내란을 지지하는 정당은 문 닫아야 한다. 해산해야 한다. 그런 정당에서 대선 후보를 낸다는 일이 어디 가당키나 한가? 해산해야 마땅한 국민의힘에서 대선 후보는 있을 수 없다. 헌법과 법률은 역시나 힘 있는 자들에게 관용이 넘친다. 해산당한 통진당에 비춰 보면 국민의힘은 백번도 넘게 해산당해야 한다. 선거 이후라도 선출된 대통령은 국민의힘 해산의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진보정치 하나로, 진보정당 대통합은 좀 더 멀어진 느낌이다. 속이 쓰리고 불편하다. 그러나 어쩌랴, 이 또한 여물지 못한 시대의 흐름이라면 지켜볼 수밖에… 다행인 것은 대작할 좋은 벗이 있고, 아름다운 산천을 쫓아 언제든 갈 수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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