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자의 대안, 투 트랙 국민주도 개헌론신용인 교수, 시민개헌넷 개헌워크숍에서 개헌운동 방향 발표7월 16일(목) 시민개헌넷은 개헌관련 워크숍을 개최하고, 개헌운동의 방향에 대해 모색했다. 이날 신용인 제주대 교수는 발표문에서 녹록치 않은 개헌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실상 '지역'과 '전국'이라는 두 거점을 동시에 공략하는 '투 트랙 전략'을 제안했다. 개헌의 실질적 추동력은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단언한 신용인 교수의 개헌성공 방략은 무엇일까. 그 내용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다음은 시민개헌넷 워크숍에서 발표된 신용인 교수의 글이다. 신용인 교수의 허락하게 글을 게재한다.
1. 중앙 정치의 교착과 주권자의 시간
우리 헌법은 1987년 개정 이후 40년 가까이 멈춰 있어, 그간 대한민국이 겪어온 격변의 세월과 시대적 변화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높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여야 정치권 역시 이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매몰된 채 극단적인 상호 불신에 빠져 있어, 합의를 통한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결국 개헌을 추동할 힘은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국민이 주도할 것인가? 나는 중앙 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고 개헌의 돌파구를 열어젖힐 주권자의 대안으로, '지역'과 '전국'이라는 두 개의 거점을 동시에 공략하는 '투 트랙(Two-Track) 전략'을 제안한다.
2. 지역 차원: 풀뿌리원탁회의 활성화 조례 제정 운동
첫 번째 트랙은 지역에서 시작된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세종특별자치시를 비롯해 전국 228개 지방자치단체(기초 226개, 광역 2개)에서 ‘풀뿌리원탁회의 활성화 조례 제정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도미노 효과’에 있다. 전국 지자체 중 단 한 곳이라도 이 혁신적인 조례를 통과시킨다면, 그 모델은 연쇄 반응을 일으켜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주민자치의 최일선인 읍·면·동 단위를 기준으로 설계한 이 조례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① 주민 주도성: 주민 5인 이상이 모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풀뿌리원탁회의’를 구성할 수 있다. ② 상시적 숙의: 일상적인 학습과 숙의를 통해 도출된 정책·입법안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에 공식 건의한다. ③ 민주적 정당성: 원탁회의의 건의안은 주민 대표기관인 ‘주민자치회’의 심의를 거쳐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④ 연계 조치 의무: 지자체장과 지방의회는 접수된 건의안이 국가나 광역 사무 등 타 기관 소관일 경우, 이를 해당 기관에 반드시 건의해야 한다. ⑤ 제도적 지원: ‘풀뿌리원탁회의 지원센터’ 설치를 명문화하여, 주민의 숙의 활동에 필요한 법률적·행정적·재정적 지원 체계를 촘촘히 구축한다.
여기서 정책이나 입법의 ‘제안’이 아닌 ‘건의’라는 표현을 쓴 배경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현행 법제상 조례만으로는 풀뿌리원탁회의에 직접적인 발의권을 부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례 발의에는 법률적 근거가, 법률이나 개헌 발의에는 헌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한계를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다.
그런 맥락에서 ‘④번 연계 조치 의무’ 조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내용이 조례에 규정되면, 풀뿌리원탁회의가 개헌안을 건의했을 때 지방의회가 국회에 이를 다시 공식 건의해야 하는 ‘제도적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풀뿌리에서 시작된 목소리가 장벽을 넘어 중앙 제도권까지 도달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이 열리는 셈이다.
이미 구체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천년의 꿈을 여는 사람들’이 위성곤 도지사로부터 “풀뿌리원탁회의는 도민의 목소리를 도정에 적극 반영하는 소중한 창구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이끌어냈다. 또한 제주도의회 의원 45명 중 10명(더불어민주당 4명, 국민의힘 5명, 진보당 1명)으로부터 조례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참고로 제주도의회는 더불어민주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발판 삼아, ‘천년의 꿈을 여는 사람들’은 조만간 조례 제정을 위해 본격적인 도의원 설득과 외연 확장에 나설 계획이다.
서울에서도 꿈틀거림이 있다. ‘청량리다일원탁회의’는 조만간 동대문구에서 조례 제정 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현재 동대문구는 구청장과 구의회 다수당이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어서 조례 통과 가능성이 비교적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서울 동대문구에서 성공적인 선례를 만들어낸다면, 이 조례 제정 운동은 들불처럼 번져나가 전국적 개헌 운동을 추동할 결정적인 기폭제가 될 것이다.
3. 전국 차원: 국회 주도의 개헌절차법 제정
지역의 조례 제정과 발맞추어, 전국 차원에서는 풀뿌리원탁회의 방식을 제도화한 '개헌절차법'을 국회에서 제정해야 한다. 국가 질서를 바꾸는 개헌은 내용의 합리성만큼이나 과정의 정당성이 중요하며, 이 과정은 철저히 주권자인 국민 주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발의된 개헌절차법안은 50만 명의 국민 청원을 요구하거나(국민청원형), 무작위 추첨 시민위원에게만 자격을 부여하는(시민의회형)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거대 권력 담론에 밀려 지역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풀뿌리원탁회의 방식의 개헌절차법은 현 교착 정국을 돌파할 확실한 대안이 된다.
첫째,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국민 주도 개헌이 가능하다. 읍·면·동 단위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원탁회의가 의제를 학습·숙의하고 상향식 개헌 청원을 주도한다. 이는 중앙 정치권의 정략적 셈법에 개헌 문제가 휘둘리는 것을 원천 차단한다.
둘째, 철저한 검증 장치로 포뮬리즘을 방지한다. 원탁회의가 제안한 청원은 주민자치회, 기초의회, 광역의회라는 3단계의 체계적인 심사 절차를 거쳐 국회로 전달된다. 이 촘촘한 상향식 구조는 대중 선동에 영합하는 즉흥적인 안이나 특정 조직의 편향된 이해관계를 자연스럽게 걸러내어, 사회적 합의가 검증된 견고한 개헌안만을 국회로 보낸다.
셋째, 개헌 논의의 상시화로 국가적 안정성을 확보한다. 선거철마다 정치공학적으로 반짝 등장하는 정략적 개헌 카드가 아니라, 국민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숙의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체계를 마련함으로써 헌법개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국가 백년대계를 안정적으로 다질 수 있다.
헌법 개정안 통과에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라는 큰 장벽이 존재하지만, 개헌절차법은 일반 법률이기에 국회 과반 의석만으로 통과가 가능하다. 따라서 다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확고한 의지만 가진다면 얼마든지 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풀뿌리원탁회의 방식을 뼈대로 한 개헌절차법 제정의 물결도 이미 일고 있다. 시민단체 ‘천년의 꿈을 여는 사람들’이 이를 공론화한 데 이어,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원생들은 직접 법안을 성안하여 발표하기도 했다. 나아가 ‘시민주도헌법개정전국네트워크’는 기존에 발의된 국민청원 및 시민의회 방식에 풀뿌리원탁회의를 결합한 '통합 개헌절차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4. 7공화국 시대를 여는 주권자의 열쇠
이 투 트랙 전략이 성공적으로 맞물린다면, 대한민국 헌정사에는 전무후무한 상향식 민주주의의 기적이 일어난다. 전국 3,500여 개 읍·면·동마다 5명 이상의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구성한 풀뿌리원탁회의에서 지역의 구체적인 삶과 시대적 요구를 담은 개헌안이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 개헌안들은 주민자치회와 기초·광역의회라는 촘촘한 여과 장치를 거쳐 가장 정제되고 견고한 형태로 국회에 도달하게 된다.
거대 양당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장벽은 아래로부터 분출하는 수많은 풀뿌리원탁회의의 거대한 민심 앞에서는 그야말로 모래성에 불과할 것이다. 국민이 직접 쓰고 제안하는 이 위대한 여정이야말로 낡은 87년 체제의 종식을 선언하고, 진정한 국민주권의 제7공화국 시대를 여는 유일한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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