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선하고 겸손하신 분. 그래서 때로는 바보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분. 어젯 밤에도 함께 맥주 한잔을 마셨는데 자기 전시회에 대해 한마디도 안하셨더랬다. 그런데 오늘 거제 둔덕의 까페 ‘수국’에 들렀더니 거기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내 그리운 바다 ‘김정일 그림전’이라 걸린 현수막을 보고도 동명이인인가 했다. 그런데 전시 안내 팜플렛 사진을 보고서야 비로소 내 이웃 김정일 화백인줄 알았다. 뭐가 그리 쑥스러우셨을까. 어제 술자리에서도 전시회 소식을 알리지 않으시다니. 자기 피알의 시대에 아직도 자신을 감추려고만 하는 사람이 존재하다니.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평소 그분의 품성답게 안내 팜플렛에도 화가 소개가 달랑 세 줄이다. ‘동피랑 레지던시 상주작가’ ‘공공미술작가’ ‘개인전 3회’. 이보다 더 겸손한 자기 소개가 또 있을까. 서울예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이력이라도 쓰실 일이지.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림들이었다. 통영 바다 풍경을 담백하게 담은 화폭에서는 진짜 통영 바다가 일렁이고 있었다. 묵직한 감동이 밀물져 왔다. 통영과 통영 바다에 대한 깊은 사랑이 화폭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어 왔다. 왜 아니겠는가.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살려준 곳이 아니던가 통영은.
경기도 여주의 화실에서 화업을 이어가던 김 화백은 인생의 풍파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고 낡은 자동차 한 대에 의지해 전국의 행사장을 떠돌며 거리의 화가로 생을 이어가다 남쪽 바다 통영까지 떠밀려 왔다. 10여 년 전 통영에 처음 왔을 때도 강구안 바닷가에서 지나는 관광객들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밥벌이를 하고 밤이면 근처 화장실에서 잠을 청하며 거처도 없이 살고 있었다. 오다가다 그를 눈여겨본 당시 푸른 통영21 윤미숙 사무국장이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날 처지에 있던 동피랑 마을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벽화를 기획해 결국 동피랑 주민들을 지켜냈던 윤국장이 이번에는 동피랑 레지던시를 만들어 집 없는 거리의 화가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해 준 것이다.
그 덕에 김화백은 절망의 구덩이에서 빠져 나와 동피랑 마을에 안착해 10년째 통영을 그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윤미숙, 그녀의 남편이 운영하는 거제의 까페 ‘수국’에서 무상으로 장소까지 제공해 전시회를 열어주고 있다. 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인연인가 그야말로 천고의 '미담(美談)'이 아닌가! 찾아가는 길이 멀지만 통영 거제 살거나 여행 오는 분들이 있으면 꼭 한번 들러 감상하시고 구매까지 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다. “가난한 사람들도 그림을 구매해 거실에 한 점 걸어놓을 수 있도록 그림 값은 낮게 책정하고 싶다.“는 김 화백의 지론대로 그림값은 너무도 싸다.
내 생각으론 0하나가 더 붙어도 비싸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아무튼 가서 감상해보고 판단하시라. 거리의 화가 김정일 화백 그림전 ‘내 그리운 바다.’ 아, 김 화백은 오늘도 동피랑 마을에서 관광객들 케리케쳐를 그리며 성실하게 밥벌이를 이어가고 있다.
<김정일 그림 전 ‘내 그리운 바다’> 일시 3.1-31 장소: 까페 수국(055-637-2707) (거제시 둔덕면 상둔리 182-1)
<저작권자 ⓒ 직접민주주의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핫뉴스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