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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리의 농부 이야기.2] '하늘땅살이'에 대하여

범대리(한살림공동체 실무) | 기사입력 2021/03/31 [13:42]

[범대리의 농부 이야기.2] '하늘땅살이'에 대하여

범대리(한살림공동체 실무) | 입력 : 2021/03/31 [13:42]

작년, 35살 되던 해에 텃밭 농사(이하 '하늘땅살이') 시작했다. 하늘뜻 살피는 것과는 거리가 멀던 한살림 실무자가 하늘땅살이를 하기까지, 그 과정에서 느끼고 배운 바들을 돌아보며 정리했다. 새삼 지난 시간 많은 분들로부터 고마운 은혜 입어 왔음을 되새기게 된다.

이 글이 오늘도 하늘땅살이 이어가는 분들께 드리는 작은 선물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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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도 구분 못하는 한살림 실무자]

나는 한살림 8년차 실무자이다. 첫 직장 '행복중심 생협'에 발딛은 경력까지 하면 10년을 '생협 실무자'란 이름으로 불렸다. 생태와 환경, 농업과 농사에 대해서는 평균 이상의 이해와 경험을 갖춘 사람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이해는 모두 관념이었을 뿐, 삶에서 실재하지 못했다. 활동과 운동 또는, '실무'를 열심히 해 온 경험이 위에 기대치를 충족하고 있다고 스스로 속이기 좋은 환경이었다. 어느 날 찾아가 뵈었던 청주 한살림 생산자 오복수 농부님이 무심코 던진 말씀이 가슴에 남았다.

농부이야기 첫 번째 주인공 오복수 농부님과
농부이야기 첫 번째 주인공 오복수 농부님과

 

"허참~ 한살림 실무자인데 모종 하나 구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더라고." 바로 나의 이야기였다. 농부님과 하루를 함께 하며 씨감자 심는 법을 배웠는데, 감자도 씨앗을 심는 줄로만 알았던 나는, 씨감자를 원래부터 알고 있는 척 하느라 곤욕을 치뤘다.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밀려왔다. 언젠가 하늘땅살이를 해봐야겠다는 막연한 마음이 들었다.

 

[범대리의 농부이야기를 시작하다]

2019년 초, 무작정 전국 각지의 친환경 농부님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한살림에서 깊어지는 고민과 답답함에 작은 숨통을 틔우기 위한 유랑기였다. 이를 <범대리의 농부이야기>라 이름 짓고 페이스북에 기록해 왔는데, 최근에 구독자 천 명을 넘었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드러나지 않는 곳곳에서 하늘땅살이의 가치를 지켜 가는 농부님들을 만나며 큰 배움과 유익을 얻었다. 간헐적인 생산지 탐방과 사무실에만 갇혀 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국내 친환경 농업의 현실을 몸소 마주하는 경험이었다.

1. 텃밭과 처음 만난 날
텃밭과 처음 만난 날

 

농부님들과 12일을 보내며 어느새 그 존귀한 삶을 동경하게 되었고, 토양파수꾼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겠다는 꿈을 품기 시작했다. 고독하고 외로운 분들 찾아가 위로하는 걸음이라 생각했지만, 어느순간부터 내가 더 큰 위안과 생기 얻고 있다는 걸 느꼈다.

 

몇 차례 농부님들을, 나의 삶터로 초대해 교제를 이어가기도 했다. 때마다 감격스럽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하늘땅살이를 직접 해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커져갔다.

 

[농사에 ''자도 모르고 시작한 하늘땅살이]

하늘땅살이를 배우고 싶은데, 어찌 해야할 지 막막했다. '귀농운동본부 과정을 등록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마을에서 하늘땅살이 씨알 모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임 때 이야기 나누며, 회사 옥상텃밭부터 해보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먼 거리에 있으면 생명들이 마음에 자꾸 걸린다."는 말씀의 의미가 처음엔 잘 와닿지 않았다. 하늘땅살이 하면서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날이 궂거나, 해가 뜨겁거나, 비가 많이 오늘날이면 밭에 심겨진 작은 생명들에 마음이 절로 갔다. 그것이 비록 작은 생명일지라도 그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스스로 빛나는 존재감을 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굳이 드러내려 애쓰며 살지 않아도 돼. 세운 뜻, 주어진 길 우직하게 가다 보면 누군가의 마음에 반드시 닿게 될거야." 내게 하는 독백이자, 마주하는 이들을 향해 품게 되는 마음가짐이었다. 옥상텃밭을 염두하던 어느 날, 마을 인근 텃밭에서도 하늘땅살이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신청부터 했다. 한살림 매장에서 퇴비를 사다가 밭에 뿌리며, 두둑을 만들고 물길을 내는 것으로 하늘땅살이에 첫발을 내딛었다.

강원도 홍천 정구호 유기농 농부님과
강원도 홍천 정구호 유기농 농부님과

 

아무것도 모르고 삽질부터 시작한 격인데, 주변에 함께 하는 벗님들이 오고가며, 귀찮은 내색 한번 없이 주는 도움 덕에 수월히 이어갈 수 있었다. '벗님들이 아니었다면 더 긴 시간을 유보하거나, 평생을 머뭇거림 속에 머물러 있었겠구나.' 후에 돌아보며 드는 생각이었다.

 

[‘하늘땅살이가 안겨 준 일상의 변화]

손수 씨앗을 심고, 작물의 소중함을 알아가며 생긴 변화는 '밥상'으로 이어졌다. 한주 1~2번도 찾지 않았던 마을밥상(소농과 생협 먹거리로 운영되는 식당)을 찾는게 주 4~5회로 늘었다. 자연히 친환경 먹거리와 마을밥상이 주는 고마움도 깊어졌다.

씨앗을 처음 심던 날
씨앗을 처음 심던 날

 

직장에선 점심마다 사먹던 걸 멈추고, 도시락을 싸다니기 시작했다. 동료들과 각자 하나씩 가져온 반찬을 펼쳐 먹으니, 건강하고 풍성한 한끼를 채울 수 있었다. "때우는" 식사가 아닌 "들이는" 밥상으로의 전반적인 전환이었다. 하늘땅살이 하면서 육식 보다는 채소를 먹는 비중이 늘었고, 음식 찌꺼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애쓰게 되었다.

집에서 나오는 부산물 양도 점차 줄어갔다. 그러다, 텃밭 한켠에서 음식 부산물을 모아 친환경 퇴비를 만든다는 소식을 접했다. 처음엔 '그냥 한번 구경해봐야지' 하고 자원 했던게, 이제는 2~3주에 한 번씩 마을밥상, 공동육아 어린이집, 마을찻집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옮겨 퇴비화하는 과정에 함께 하게 되었다. 집에서도 음식부산물 비닐을 쓰지 않게 되었고, 그 외 무심코 이어 온 일상의 낭비를 두루 살펴보게 되었다. 퇴비 만들기를 통해 심고, 거두는 차원에서 이해하던 하늘땅살이의 범위를 '순환'까지 넓힐 수 있었다.

해남 유성농법 고유미, 나성일 농부님과
해남 유성농법 고유미, 나성일 농부님과

 

[‘토박이씨앗나눔잔치하늘땅살이’]

무모하게 시작한 하늘땅살이였지만, 땅은 언제나 기울인 노력과 정성 보다 더 큰 결실을 내주었다. 자연이 지닌 기운과 만물의 무한한 생명력을 몸소 깨닫고 누리는 시간이었다. '텃밭하면 주말에도 잘 못쉬겠네' 하던 우려는 '텃밭에 힘입어 보내는 평일'로 바뀌어 갔다. 주저없이 올해도 하늘땅살이를 이어 가야겠다 한 이유이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니, 작년에 신나게 거두고 먹기만 하느라, 남긴 씨앗이 없었다. 그러다 농도상생 마을공동체 내에 <토박이씨앗나눔잔치>를 함께 하며 '토박이'를 지켜온 노력의 의미와 '씨앗'의 가치를 새롭게 배워갈 수 있었다.

7천 종에서 시작해 150여 종 밖에 남지 않은 '토박이씨앗'을 지켜 가는, 이 땅 곳곳에 퍼져 있는 '씨알'들이 고맙고 귀하게 여겨졌다.

보은 정경진, 최정희 농부님 밭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은 정경진, 최정희 농부님 밭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 알에 씨앗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 한살림에서 듣고 또 들어왔던 말의 의미가 실존적 경험과 맞물려 다시금 와닿았다. 도시에서 '겨우' 한이랑의 텃밭을 일구는 것일지라도, 이는 '' 우주를 살리는 걸음과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늘땅살이를 통해, 순환하는 생태시민으로 거듭나는 것이야말로 절박한 생애 소명이자, 시들어 가는 인류의 과업이라는 걸 느꼈다. 갈수록 핍절해지는 땅과 생태를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소농들과 함께 호흡하고 연대하는 걸음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어갈 하늘땅살이와 함께, 나의 삶도 온 생명 더불어 곱게 어우러져 가길 소망한다.

2021.3.27(흙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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