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서 기도를 한다. 그런데 성모님, 예수님, 천주님은 안 뵙고 성당만 보고 온다. 절집에서 부처님은 안 뵙고 절집만 보고 온다. 한옥에서 자는데 나무집만 보고 온다. 전통술을 마시는데 전통은 모른다. 어떤 곳에는 장소의 혼이 있다.
전주향교는 사악함을 물리치는 벽사의 홍살문을 지나 동입서출의 누문인 만화루를 거쳐 전묘후학(앞에는 유학의 큰 성인을 모시는 예의 공간 대성전, 뒤에는 공부를 하는 명륜당)을 만난다. 향기롭고 변하지 말라고 은행나무가 5백 년 역사를 지키며 있다. 성당에 갔으면 개독교라 하지 말고 한 번쯤은 성모님 생각을 하고, 향교에 갔으면 고린내 나는 유교라 하지 말고 천명지위성(중용 첫 문장), 천인합일, 수기치인을 새겨 봐야 한다.
전주 한옥마을에 와서 부디 천박한 상업만 춤춘다고 혼내지 마시고 장소의 혼을 만나시기 바란다. 유교의 공자, 묵가의 묵자, 동학의 수운, 원불교의 대종사, 기독교의 예수님, 동학의 수운 그 제자들이 다 있는 곳이 전주 한옥마을이다. 남으로는 천하공물 정여립의 생가터가 있다. 초록바위는 동학의 김개남 처형지이자 천주교의 순교지이다. 과연 그렇다. 그 곳은 목마른 말이 물을 찾는 갈마음수의 지세이다. 오목대에서는 몽골인 이성계(전주인이 아니다 )와 개성인 정몽주가 함께 술을 마셨다. 후백제국 30년의 진훤(견훤)의 동고산성, 남고산성이 병풍을 친다. 아 후백제국 수도 전주, 1894년 6개월 동학국의 수도 전주 그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어찌 서울이 전주를 이기랴.
유학의 경기전과 서학의 천주교 전동성당은 10m를 두고 마주 본다. 서로 배운다는 교학상장이든, 건방지게 조선의 얼이 있는 경기전 앞에 탈아입구 서학의 성당이냐고도 할 수 있겠다. 매국노가 되기 전에 영어, 일어, 로시아어, 중국어에 능했던 조선의 천재(?) 전라감사 이완용이가 그렇게도 건립에 반대했던 전동성당은 어떻게 세워졌나. 동학군에 대포를 쏘던 홍계훈의 다가산 아래 활터 천양정에서 날새들의 하늘에 활을 쏜다. 다가사후 천양정에서 전주천 건너 서문교회는 옛 전주부성의 서문자리이다. 동학군이 입성한 문이다. 그 자리는 조선 최고의 학문거리이자 책방거리였던 서포거리이다.
그 서문교회에서 훗날 친일파가 됐던 대구 사람 현제명이 "오 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노래를 지었다. 서문을 지나면 간판 그림을 그리던 이응로 화백의 청춘이 있다. 지금은 결혼 용품전인 전주 최초의 서양식 콘크리트 건물인 박다옥에서는 그 시절 허무의 끝판왕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축음기의 소리통을 울렸을 것이다. 박다옥에서 쌉싸름한 가베(커피)와 아사히삐루(지금 하이트맥주의 원조)를 마신 개화파 서학이는 죽력고(전녹두가 마셨다는 전통 술)를 마신 개벽파 동학이와 어깨동무를 했나 주먹질을 했나
이 두 청춘들은 날개 없는 겨드랑을 긁으며 틀림없이 식민지 청춘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식산은행(지금 산업은행) 앞에서 구토를 했을 것이다. 성벽은 무너지고 한 많던 인생들의 신작로 개화로 팔달로를 건너 주막거리로 갔겠지.
식민지 금융조합(지금 대원사) 건물에는 덴노헤이까반자이데스 (천황폐하만세) 현수막이 나부꼈겠지. 일제 경찰서장 관사(지금 경성 게스트 하우스)앞 주막에서는 탁배기에 취한 소리꾼이 "적막옥중에 찬 자리요" 쑥대머리를 한다.
왕의 뜰 경기전에는 와룡매가 지고, 백성의 동문길에는 막걸리 냄새가 저문 사월의 하늘에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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