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 기념주간이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답답하여 소설 쓰는 이광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봐, 전녹두 고택 다녀오자고 장군님 기운 좀 받자고. - 응, 그려!
비는 멈췄다.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 일며 동진강 화호들, 배들평에 맞닿았다. 정읍천과 동진강 두물머리 만석보터를 지나 말목장터(지금 정읍시 이평면 소재지)에서 북서쪽 조소리 전녹두고택에 이르렀다. 전녹두고택은 말년에 몇 년뿐이지 전녹두는 생의 대부분을 원평, 태인, 산외에서 보냈다. 이광재 소설 <나라 없는 나라>에서 전녹두 딸 갑례는 우물가에서 전녹두 호위무사 을개에게 '을'자를 새긴 목각을 건넸다. 정인의 표시이기도 하겠지만 싸움에서 죽거든 '을'자 목각으로 찾겠다는 결의였다. 목각을 찾으면 아버지 전녹두도 정인 을개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다. 갑례는 목각을 주며 "울지 않을 테야." 그랬다.
- 전녹두와 싸움에 나선 할배들을 하찮은 말단 탐관오리 조병갑 따위에 견주다니. - 그렇지. 이 싸움은 아주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준비한 싸움이지. 원평 황새마을에서 살던 10대의 전녹두가 공부하러 다니던 스승에게 그랬다지. "이런 공부 더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 스승이 그랬다는 거야. 앞으로 철로(전녹두 어릴 때 이름, 쇠화로) 니는 내 이름도 얼굴도 동네 이름도 잊어라. - 아, 긍게 성리학 스승이 철로가 큰일을 낼 역적이 될 줄 알았던 모양일세. 그렇다면 적어도 10대 후반부터는 비밀결사를 하고 다녔단 말이지.
- 그렇지. 이 비밀결사들이 동학을 만난 것이지. 전녹두 가계를 보면 첫 송씨 부인은 전주화약 시기의 호남도집강 송희옥의 집안이야. 글고 아이들 젖먹이로 들인 둘째 부인 남평 이씨는 김개남이 소개한 사람이야. 전녹두 둘째 딸인가는 손화중 집안 며느리가 되었단 말이지. 태인, 원평에 살던 전녹두는 원평 거여리의 김덕명의 돌봄을 받았던 것이고. - 아, 그렇겠네. 가계도를 보면 정여립 대동계가 그 당시에 부활한 것이고만. - 그렇지. 이 조직도를 보면 전녹두가 없이는 엮어지지가 않아. 그러니까 이 결사가 고창•무장•영광에 손화중, 남원•임실•순창에 김개남, 김제•원평•금구에 김덕명, 완주•고산•익산 등에는 송희옥 이렇게 배치가 된 것이지.
- 그럼 서장옥은 - 그게 여러 말들이 있지. 전녹두의 조직을 서장옥이 뒤에서 은밀히 돕고, 자문하고 감화를 주었다고도 하고. 본디 스님 출신인데, 불가 비밀결사 '당추'(땡초)라는 말도 있고... 1차 봉기 때는 무슨 일인가로 한양 감옥에 있었는데 대원군이 풀어줬다고 하는데 종적이 묘연하다가 1900년에 잡혀서 죽지. - 그러겄네.
- 근디 두령들이 동학과는 별개로 조직을 하다가 시세를 본게로 동학과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진짜 동학하는 사람이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했던 것이라 보네. 울고싶은디 때맞춰 전녹두 부친 전창혁 선생이 장두로 나섰다가 조병갑한테 장살당한 것이지. - 그렇게 이야기를 꿰면 김개남과 전녹두의 노선 차이 같은 것은 없다고 봐야 옳겠지. 다만 운영의 차이나 성품 같은 것이겠지. 여하튼 전녹두가 없으면 조직이 안 그려지는 게 맞네.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는 백산에 올랐다. 동서남북 사방이 다 지평선이다. 바람은 거세고, 먹구름은 으르렁거린다. 하늘과 땅이 맞닿아 서로가 서로에게 접신강림하고 감응하는 듯했다. 사방이 탁 트였으니 과연 토포군의 일정일동이 다 눈에 보이는 군사 요충지였다. 더구나 감영 토포군이 오는 길목은 동진강이 막고 있지 않는가 사방이 들이니 군량미 또한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동남으로는 두승산, 동북으로는 모악산, 서북으로는 미륵산, 남서쪽으로는 변산, 서쪽으로는 서해이다. 동학혁명 기념주간이라면 산꼭대기마다 한날 한시에 봉화를 올리고 동진강에는 만인만북 소리가 강물을 뒤집고, 전라도 56부목군현(지금은 전라도 43개 시군자치구)마다 깃발을 걸고, 거리마다 골목마다 술동이와 두부, 김치를 내고 놀아야 하는 것이다.
어찌 황토현 공원(?)에 갇혀, 깃발 몇 개 꽂고, 기념식이나 하고 마는가 동학혁명은 기념과 추모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령인데.... 이 작가와 나는 답답한 황토현에 가지 않기로 하고 백산에서 내려왔다. <저작권자 ⓒ 직접민주주의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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