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이 주인 되는 세상, 대동세상을 위하여 東學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지금바로 민족통일>하라!
사발통문 결의가 있은 지 129년, 이다음 해 ‘동학농민1차봉기’가 있었고, 진군하던 동학군은 ‘전주화약’으로 한양 진군을 멈췄다. 결국 전봉준은 포로신세로 서울로 잡혀간다. 진정 대동의 꿈은 이렇게 무너지는가 k팝을 비롯해서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 오대양 육대륙을 석권했다.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의 꿈은 이미 실현된 듯하다. 코로나 팬더믹에서 최고의 방역체계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방력은 세계6위다. 조만간 일본을 제치고 세계 5위를 전망한다. 드디어 분단 77년 만에 G7에 등극했다. 건국 이래 최고다. 그러나 국내의 상황은 정반대다. 부동산가격은 폭등했다. 청년 일자리가 없다. 더이상 청년은 갈 곳이 없다. 갈 곳이 없는 게 어디 청년뿐이겠는가 지난 10년 내내 지금까지 한국은 자살률 세계 1위다. 저출산률 세계 1위의 나라, 노인빈곤율 세계 1위의 나라다. 이렇게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명을 포기하는 나라, 잉태를 거부하는 불임의 나라, 헬조선이라 부르는 이 나라,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4.19혁명에서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정치민주화로 형식적 민주주의 요건을 갖췄다. 기본소득은 보편화 되었다. 이는 경제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불평등은 더 심화 되고, 왜 천민자본주의는 더 기승을 부리며, 왜 적폐가 주인행세 하는가 이런 헬조선의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는 토지불평등 때문이고, 둘째는 대의제 간접민주주의의 한계 때문이고, 셋째는 민족분단 때문이다.
-헬조선의 근본원인, 첫째는 토지불평등 때문이다. 동학혁명을 다른 이름으로 동학농민전쟁이라 한다. 농민의 토지주권을 위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인류역사에서 모든 불평등의 핵심은 토지불평등에서 온다. 하여 동학은 토지평등권을 위한 혁명이다. 15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불평등은 150년 전과 다르지 않다. 고려말의 상황보다 심하다. 상위 1%가 자산의 50%를 가지고 있다. 상위10%가 자산의 97%를 가지고 있다. 계층간 세대간 양극화는 지속해서 깊어져 불평등지수 8.5를 넘어서고 있다. 불평등지수 7.4에서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 지금 이 땅은 150년 전 동학혁명의 전야다. 오늘 이 자리는 전주화약으로 멈춘 진군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바로 이 자리는 동학농민전쟁을 모의했던 사발통문의 자리다. 참으로 뜻깊은 자리다.
-헬조선의 근본원인, 둘째는 대의제 간접민주주의의 한계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회에 노동자 농민출신은 3%밖에 안 된다. 모두가 변호사 판검사출신과 의사 교수 출신들이다. 국회의원의 평균자산은 국민 평균자산의 10배다. 고양이가 쥐 생각하겠는가 “민중은 개돼지다”라는 고위공무원의 발언을 기억하는가 저들이 어찌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정서를 알겠는가 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대의할 뿐이다. 이제 대의제를 넘어 직접민주주의로 전환은 시대정신이 되었다.
-헬조선의 근본원인, 셋째는 민족분단 때문이다. 민족분단으로 인한 모순은 더 본질적이고 구조적이다. 왜냐하면 분단체제는 토지불평등과 대의제 간접민주주의의 모순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개혁을 위한 몸부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이 모든 개혁이 실패한 까닭은 <통일>을 전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위한 수많은 시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만 3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2번의 북미정상회담이 있었다. 그러나 분단 77년이 되도록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조차 담보하지 못했다. 이 모든 개혁이 실패한 까닭은 <민족통일>을 전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7년간 분단된 나라에서 평화와 통일은 전혀 다른 말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코리아에서 평화와 통일은 전혀 다른 말이다. 세계 마지막 분단국 코리아에서 평화와 통일은 전혀 다른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평화와 통일을 구분하지 않고 써왔다.
특히 민주당은 ‘자주통일’, ‘평화통일’, ‘민족통일’ 중에서 오직 <평화통일>만을 주장한다. <평화통일>만을 주장하는 게 어디 민주당뿐이랴!! 6.15단체를 비롯한 모든 시민사회 역시 <평화프레임>에 빠져있다. 그래서 분단 77년이 되도록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조차 담보했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4년 전, 우리에게도 <민족통일>의 길이 있었다. 2018년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은밀히 주고받은 문재인 김정은 두 남북정상의 약속은 <자주통일>의 신호탄이었다. 백두산에서 맞잡은 두 정상의 손은 한민족의 실핏줄이 이어지는 <민족통일>의 순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선언한 평화의 꿈은 세계를 향한 <평화통일> 선포였다. 그러나 개성연락소가 폭파됐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는 분단된 나라다. 이번이 분단된 나라의 20대 대통령 선거다. 그러나 분단된 나라의 대통령선거에서 통일관련 공약이 없다. 온통 ‘평화타령’이나 하고 있다. 아니 <평화프레임>에 갇히면 통일은 보이지 않게 된다. 봐라. 국힘당의 反통일과 민주당의 非통일과 정의당의 無통일이다. 그 어디에도 통일은 없다. 평화통일론의 핵심은 단계별 점진적 통일론으로 평화체제라는 단계를 설정한다. 그러나 평화체제는 지금은 절대로 통일의 때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지금바로 와있는 통일의 때를 놓치게 한다. 통일부가 통일보다 평화타령이나 하고 있다. 그래서 ‘평화부’로, ‘남북관계부’로 바꾸자는 말이 나온다.
<평화통일>을 <지금바로 민족통일>로 대전환을 해야 한다. 오직 분단된 한민족의 <민족통일>만이 <자주통일>과 <평화통일>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에게 통일은 일거에 모든 모순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가 될 기회다. 이런 점에서 통일혁명은 블루오션이며, 사상 최대의 명예혁명이 된다. 세계 마지막 남은 분단국 코리아에게 주어진 기회다. 천명이며 천운이다. 그러나 공자님 말씀에 (天與不受 反受其殃耳)”만일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게 된다.”는 말이 있다. 긴급한 까닭이다. 지금이 바로 통일의 때다. 미중패권경쟁과 지정학적 힘의 변동, 코로나사태, 촛불혁명 이후 시민의식의 변화와 국내외 정치·군사적 관점에서 이보다 좋은 통일의 기회는 없다. 천년에 한 번 있는 기회다. 이때를 평화타령이나 하면서 놓치고 있다. 시급한 까닭이다. 국내외의 모든 모순을 일거에 극복할 수 있는 사상과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때에 남북의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는 변증법적 창조적 통일론은 없는가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지금바로 민족통일>을 이룰 수 있는 사상은 어디에 있는가 있다!
-바로 東學이다.
남북은 언어가 같고, 문화가 같다. 역사가 같고, DNA가 같다. 이런 민족의 동질성은 77년의 세월로 바뀌지 않는다. 특히 동학의 대동사상은 남북이 공유하고 있는 역사다. 하여 대동사상은 홍익인간과 함께 민족통일의 사상적 뿌리다.
사람이 하늘인 세상, 사람을 하늘같이 모시는 세상, ‘대동세상’에서는 분단 77년으로 인한 ‘다름’은 변증법적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다름은 융합과 통섭의 훌륭한 자원인 ‘차이’가 된다. 같음은 같음대로 민족통일의 주춧돌이 되고, 다름은 다름대로 통일조국의 디딤돌이 된다. 이렇게 민족통일의 모든 가능성을 바로 동학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아니 동학만이 <민족통일>을 가능하게 한다. 동학만이 <지금바로> 통일을 가능하게 한다. 동학사상에 의한 <분단극복>만이 불임의 나라를 넘어 생명의 나라로 갈 것이다. 동학의 대동세상에 의한 <통일>만이 이편 아니면 적이 되는 나라의 모든 모순을 일거에 극복할 수 있음이다. 輔國安民은 나라를 지켜서, ‘외세의 물리적 폭력으로부터 民을 편안케 한다’는 뜻이다. 除暴救民은 ‘구조적 모순으로 인한 폭력으로부터 民을 해방시킨다.’는 뜻이다. 동학이 혁명인 까닭은 ‘민이 스스로 자신을 폭력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뜻이다. 이렇게 동학은 우리 역사에서 저항의 주체가 권력의 주체가 된 유일한 혁명이었다. 그러나 아직 혁명은 완성되지 못했다. 아니 동학혁명은 실패했는가 100년 정당을 외치던 180석의 민주당은 수구보수 반통일세력의 부활을 허용했다. 급기야 이번 20대 대선에서 정권교체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광화문촛불혁명은 박근혜 개인의 청산일뿐이었다. 광화문촛불혁명은 수구보수 반민족 반통일세력의 청산으로까지 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시 묻는다. 촛불혁명은 실패했는가 적폐청산과 토지평등권 실현, 그리고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몸부림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해방 후 친일반민족주의자 단 한 사람도 처단하지 못한 역사에서, 선거를 통해서 대동세상이 실현될 것이라 믿는가 하여 변혁의 주체는 다시 정의돼야 한다.
변혁의 힘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에서 나온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다. ‘깨어있는 시민’과 ‘조직화’ 이 두 개가 만나면 혁명이 된다. 바로 동학이 그랬다. 그렇다면, 얼마의 사람이 모이면 될까 답은 1%다. 사회학의 연구조사에 의하면, 1%가 조직화 되면 그 사회공동체 전체가 바뀐다. 인류 모든 변혁의 역사가 그랬다. 바로 동학이 그랬다. 광화문촛불도 1%의 혁명이었다. 그러나 광화문촛불의 성과를 민주당이 독식했다. 민주당은 적폐청산과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라는 촛불의 2대 명령은 거부됐다. 저들 또한 개혁의 대상인 까닭이다. 촛불은 민족통일이라는 더 높은 이상으로 타올랐어야 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촛불을 서둘러 해산했다. 시민사회와 함께 촛불은 가야 할 방향을 잃고 꺼졌다. 하여 촛불혁명 또한 저항의 주체가 권력의 주체가 되지 못한 미완의 혁명이 됐다.
이런 점에서 통일혁명을 완수할 주체세력의 정치세력화는 필연적이다. ‘변혁의 주체’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이는 시대정신의 요청이다. 이에 우리는 동학으로, 지금바로 민족통일로 기꺼이 응답하리다. 하여 통일혁명 주체로 미완의 동학혁명을 완성하리다. 그러나 우리는 해방 후 친일반민족주의자 단 한 사람도 처단하지 못한 역사다. 이런 나라에서 선거를 통해서 대동세상이 실현될 것이라 믿지 않는다. 하여 ‘변혁의 전략’은 <지금바로 민족통일>이라는 뜨거운 용광로 안에서 다시 짜야 한다. 적폐청산과 토지평등권 실현, 그리고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몸부림은 <지금바로 민족통일>이라는 용광로 안에서 융합할 것이다. 아니 <지금바로 민족통일>이라는 뜨거움만이 헬조선의 모든 모순을 질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民이 주인되는 세상, 대동세상을 위하여 東學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평화통일>의 촛불을 내리고 <통일평화>의 횃불을 들라!! 개벽(開闢)하라!! 民이 주인되는 세상, 대동세상을 위하여 東學의 이름으로 다시 명령한다. 이제 <단계별 점진적> 평화의 목검을 내리고, <지금바로 민족통일>의 진검을 들라!!
三尺誓天山河動色, 一揮掃蕩血染山河 “세척의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도 빛이 변하고, 크게 한번 휩쓰니 피로써 산과 강을 물들인다” 이순신 장군께서 칼에 새긴 글이다. 아니 명령이다. 全軍 進軍하라!! 단기4355년, 분단77년 통일당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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