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영 논단]유대인 학살죄로 처형된 아이히만이 “잘못된 불법의 명령을 마지못해 따른 것도 불법행위”
직접민주주의 뉴스| 입력 : 2022/07/2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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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법을 강변하며 독선을 밀어붙이는 행정부 - 프랑스에서 정부조직 개편은 입법부 소관이며, 자동으로 헌법재판소 사전 심사를 거쳐 - 위법한 행정 조치에 대해 시간상으로 지연된 입법부의 견제는 당장 피해를 양산 - 즉시 저항을 통해 불법 행정 명령에 의한 피해 줄여야 - 위법한 행정부 명령에 대한 복종은 주권자 국민에 대한 배반
26일 오전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대통령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의 불법 여부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가 개진되었다. 이석연(68·사법연수원 17기) 전 법제처장은 “로스쿨 초년생한테 물어봐도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이석연은, 윤석열 정부가 ‘법무부 검찰국처럼 행안부 경찰국을 만들겠다’며 시행령 개정에 나선 것'에 대해 “상위법인 정부조직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명백한 법 체계 위반”이라는 의견이다. “법치주의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권력을 잡은 쪽에서도 준수해야 의미가 있다”고 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사법연수원 동기인 검찰 출신 이완규 법제처장은 "시행령으로도 경찰국 신설이 가능하다, 국무회의 의결을 앞두고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을 40일에서 4일로 크게 줄여줬다”고 한다.(한겨레, 2022.7.26.)
문제는 이 같은 이견 자체가 아니다. 견해의 차이는 언제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견해의 충돌이 있을 때 힘 있는 측의 일방적 강요가 아니라, 그것을 검토해서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내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같은 장치가 한국 법제에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에서 드러났다. 엄청난 제도적 공백이다.
단순히 국회의 입법도 거치지 않고 정부의 ‘시행령’을 통해 행안부 산하 경찰국을 신설하는 것이 합법인가 불법인가의 내용을 따지는 것보다 더 근원적인 것, 절차상의 하자를 뜻한다. 이 같은 제도적 공백 때문에, 대화보다는 힘의 대결로 치닫는 형국이다. 경찰국 신설을 강행하려는 행정부는 총경급 토론의 자리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울산시 서장)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 했다. 이 같은 조치에 반발하여 14만 경찰이 전체회의를 개최할 예정으로 충돌이 확산할 모양새에 있다.
대통령 윤석열은 “조직개편안에 대해 집단으로 반발하는 것이 중대한 국가의 기강 문란”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 조직개편을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그것도 시행령이라는 편법을 통해서 강행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시비거리가 된다.
한 예로, 프랑스에서 정부조직 개편은 특별히 엄중하게 다루어진다. 프랑스 현행 헌법은 이미 반세기도 더 지난 1958년 드골 행정부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여기서 정부조직 개정은 의회 입법 사항이다. 또 시행하기 전 자동으로 헌법재판소에 넘겨서 그 합법성 여부를 사전 검토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불복하는 경우, 유권자 1/10에 해당하는 의원이 서명하면, 국민투표에 바로 회부하여 그 뜻을 확인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중첩된 절차에서는 행정부의 자의적 독단에 의해 정부조직 개편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렇듯, 프랑스에서는 정부조직 개편을 행정부에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한국은 이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조야한 상태이지만, 적어도 행정부 시행령을 이용한 정부조직 개편이 합법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 그런데도 윤석열의 서울대 법대·사법연수원 동기에다 검찰 출신인 이완규가 정부 시행령으로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하는 것이 합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은 합법성 여부와 무관하게, 불법이라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일 뿐이다.
그 확실한 증거가 두 가지이다. 첫째, 상대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토론하고 싶은 뜻 자체가 없이, 막무가내 합법이라고 강변하는 점이다. 토론을 거부, 금지하고 남의 입을 막는다는 것은 자기 뜻을 독선적으로 관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둘째, 행정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 것을 요구하며, 이의 제기에 대해 12.12. (무장) 쿠데타에 준하는 상황으로 규정하고 징계하겠다고 나서는 점이다.
공직자는 상급 부처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가 이 문제 관련하여 유대인 학살에 연루된 독일인 아돌프 아이히만를 인용할 수 있다. 그는 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자취를 감추었고 아르헨티나에서 신분을 숨기고 살다가, 모종의 계기로 인해 정보를 입수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이스라엘로 납치되었다(1960.5.11.). 아이히만 “자신은 권한이 거의 없는 '배달부'에 불과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크건 작건 아돌프 히틀러나 그 외 어떤 상급자의 지시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고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자신은 명령을 따른 것뿐이며, 대량학살에 관여한 것은 자신의 직접 의지가 아니었고, 단지 상급자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재판부는 "명령이 잘못되고 불법적인 경우, 명령을 마지못해 따른 것 또한 불법적인 행위로 성립된다"로 답하고 사형을 선고했고, 교수형이 집행되었다(1962.5.31. 23시 58분). 사형당하기 며칠 전 그는 당시 이스라엘 대통령(이츠하크 벤츠비)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신은 하수인일 뿐이라면서 교수형을 면하게 해달라고 탄원했다. 그러나 사형은 그대로 집행되었다.
고 박원순 사건 관련 변론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진 정철승 변호사가 공무원의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고 나섰다. “검찰개혁에 반발하는 검사들의 집단행위는 전혀 처벌되지 않았는데, 나는 이를 공수처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공무원은 법령과 공익에 충실하게 공적 직무를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익 집단화되면 안 되기 때문에 집단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타당성이 있다”, “행안부의 경찰국 설치에 반발하는 경찰들의 집단행위 역시 제재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무엇보다 현행법 위반행위이기 때문이고, 공익이 아닌 경찰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외부적 통제에 반발하는 행위이기 때문”, “경찰은 검찰이 가진 모든 문제를 갖고 있는 데다 그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들까지 지니고 있는 거대 권력기관이다. 현재 자치경찰제도 도입, 국가수사본부 설치 등 경찰의 비대화, 권력 집중화를 견제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조치들이 마련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경찰의 집단행위가 용납된다면, 향후 교육개혁에 반발하는 교육공무원들의 집단행위, 관료개혁에 반발하는 관료 공무원들의 집단행위 등도 용납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검찰 공무원들의 집단행위는 사실상 용납된 상태가 되었다” 등의 발언이 그러하다.
그런 다음 정철승은 “윤석열 국힘당 정권이 정부직제개편을 통해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권력의 도구로 만들려고 한다면, 야당이 이를 반대하고 입법권을 통해 견제하는 것이 당연하다. 더욱이 현재 제1야당인 민주당은 무려 170석이 넘는 거대 야당 아닌가 민주당은 야당이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을 하라!!”라고 주문했다.
정철승의 이 같은 견해는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에 대한 이스라엘 재판부의 입장과 상반되는 것으로서, 크게 두세 가지 문제점을 지닌 것이다.
첫째, 권력 집중화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들이 미흡한 데서 파생되는 문제가 검찰, 경찰, 교육 공무원뿐 아니라, 바로 행안부 산하 경찰국을 신설하려는 행정부 자체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른바 “비대한 경찰조직”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서, 경찰을 자신의 아바타, 허수아비로 만들려고 하는 현 집권층 행위 자체가 권력 집중에 의한 불법행위일 가능성 여부는 홑이불로 덮어 가려버렸다. 정철승의 눈에는 경찰 권력까지 손 안에 쥐고 흔드려 하는 더 큰 권력 집중은 아예 보이지 않고, 그 집중된 권력에 의해 두서도 없이 핍박당하여 대기발령 난 경찰 권력이 오히려 더 ‘비대’한 것으로 보이는 모양새다.
둘째, 정철승은 공직자의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는 이유로서, ① “법령과 공익에 충실하게 공적 직무를 수행할 의무를 부담”해야 하는 것, ② 공직자가 “이익 집단화되면 안 되기 때문에 집단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타당성이 있다”라는 점을 들었다. 그러니 정철승은 행안부 산하 경찰국 신설이 공익이라고 보는 것이고, 또 거기에 저항하는 경찰들의 집단행동이 “이익집단화”의 소산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정철승의 논리에 따라, 만일, 경찰국 신설이 공익이 아니라 오히려 공익을 해치는 것이고, 또 경찰들의 저항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민초의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경찰들의 집단행위를 금지하는 행정부의 처사가 타당성이 없는 것이 된다는 결론이 나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정철승은 “윤석열 국힘당 정권이 정부직제 개편을 통해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권력의 도구로 만들려고 한다면”, 공직자의 당장의 불복종 대신, 170석이 넘는 제1 거대 야당이 입법권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이게 좀 우스꽝스럽다. 갖은 절차를 통해 입법을 완료하려면 하세월이다. 그동안 불법으로 이루어진 정부직제 개편을 통해 얼마나 큰 피해가 초래될 것인지에 대해 정철승은 무책임하다.
정철승의 말은 틀렸다. 불법이 자행되면, 그 잠재적 피해에 대한 방어권은 온갖 꾀를 동원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아이히만이 수용소에 있는 유대인을 학살할 때, 그 유대인들이 의회를 찾아서 의회가 유대인을 가스로 학살하지 않도록 입법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위법한 행정부 명령에 대한 복종은 주권자 국민에 대한 배반이다. 불법과 불이익에 대한 저항은 즉각적으로 온갖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은 장기적 합법의 입법과정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