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새 다큐영화 두 편을 보았다. 이름이 제목이다. 아마도 먹고살기 바쁜 분들에게 생소한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두 분은 우리 현대사의 좌표를 찍는데 있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가 며칠을 두고 거의 동시에 공개되었다. <김상진>은 첫 영화이고 <이태석>은 <울지마 톤즈>와 <부활>에 이은 세 번째 영화이다.
김상진은 서울농대 축산과 학생으로 1975년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항거하여 할복자살한 민주화 열사이다. 박정희는 1972년 영구집권을 목적으로 유신체제를 선포하고 청년학생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2년 뒤 <민청학련사건>과 함께 청년학생들의 배후에 북한 간첩조직이 암약하고 있었다며 <인혁당재건위> 사건을 조작 발표한다. 그리고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자마자 18시간 만에 인혁당사건 관련자 8명을 전격적으로 처형한다. 한국 사법 사상 가장 끔찍한 ‘사법살인’으로 기록되는 날이다. 이 소식을 접한 서울농대 김상진 학형은 1975년 4월 11일 농대 교정에서 ‘박정희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을 낭독하고 자진 할복한다. 당시에 같은 대학 2년 생이었던 나는 그 사건의 충격으로 운동권의 자장에 갇혀버리고 만다. 사건 한 달 뒤 5월 22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일군의 학생들이 김상진열사 추모장례식을 열었다가 모두 잡혀간다. 당시 법대 신입생이었던 박원순도 얼떨결에 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적당한다. 영화 속 박원순의 인터뷰 장면은 보는 이의 가슴을 더 찢어지게 만든다. 영화는 김상진 열사의 10년 후배인 안병권이 메가폰을 잡고 3년 간의 작업 끝에 완성했다. 감독이 전문 영화인이 아니지만 시대적 고증과 함께 죽음으로 알리고 싶어했던 열사의 메시지를 충실히 담아냈다.
이태석은 내전으로 망신창이가 된 남수단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47세의 나이로 암에 걸려 선종할 때까지 온몸을 바쳐 인류애를 실천한 가톨릭 사제이다. 신부님은 당신이 갖고있는 어마어마한 탈렌트를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었던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남김없이 쏟아붓고 가셨다. ‘열정’과 ‘순수’가 ‘하느님 사랑’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삶이다. 가톨릭 신자로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김상진과 이태석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충실히 살다간 위인이다. 시대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 짧지만 치열하게 살다간 이들의 삶은 밍밍하게 떠밀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선방의 죽비 같은 존재이다. - 황대권(생명평화운동가, 야생초편지 저자) <남수단의 슈바이처~이태석사제 생애> 2000년 4월 27일 종신서원을 하고, 2000년 6월 28일 로마에서 부제서품을 받았다. 2001년 6월 24일 서울 구로3동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 아프리카를 향해 선교사로 출발하여 12월 7일 아프리카 남부 수단 와랍 주 톤즈에 부임한다. 그곳에서 가난과 기아, 질병 등으로 도탄에 빠진 마을의 참상을 보게 되고,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겸한 의료봉사활동과 구호운동에 헌신한다. 병실 12개짜리 병원을 짓고, 진료소를 만들어,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보며 인근 80여개 마을의 순회진료와 예방접종도 했다.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교 12년 과정을 꾸려 수학과 음악도 가르쳤다. 기숙사도 짓고 톤즈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악기도 가르쳤다.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나환자(한센인)들의 신비스러운 힘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 — 이태석,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중 그러나 2008년 11월 한국에 휴가차 잠시 입국하였을 때, 대장암 4기를 진단받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암투병 끝에 2010년 1월 14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새벽 5시 35분에 살레시오회 형제들과 가족들 그리고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종하였다(향년 48세). 유해는 전라남도 담양군 천주교 공동묘역 살레시오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그의 이야기는 살레시오회 잡지 《살레시오 가족》과, 까리타스 수녀회의 《생활성서》에 연재되었고, 《친구가 되어주실래요》라는 단행본으로도 소개되었다. --------------------------------------------------------------------------------------- 영화 이태석 영화 ‘이태석’(감독 이우석, 제작 드림채널)은 남수단에서 사랑과 헌신의 씨앗을 뿌린 이 신부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곳에서는 여전히 그 씨앗이 싹 틔워 사랑과 희망을 퍼뜨리고 있는 모습을 전한다. ‘이태석’에서는 그동간 이태석신부를 다룬 영화들에서 공개되지 않은 그의 모습, 특별히 인간미 넘치는 모습과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 제자들과 주민들이 지금까지 그를 어떻게 추억하며 또 다른 씨앗을 뿌리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 불교 신자가 본 예수
그는 은퇴 자금을 털어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불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사제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를 연이어 제작한 것이다 “영화 <울지마 톤즈>에 이어서 영화 <復活>을 제작하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었나요? 남 수단에 찾아갔더니 의사이거나 의대생이 된 제자가 무려 57명에 달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 신부님 때문에 의사가 됐고 신부님처럼 살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어느 날은 이태석 신부 제자들이 한센인 마을에 가서 봉사 진료를 했어요. 60명 정도 사는 마을인데, 환자 300명 정도가 모였어요. 의사가 없으니 주변 마을에서 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거예요. 원래 영화 제목은 <우리가 이태석입니다> 였는데 그 자리에서 제목을 <復活>로 바꿨습니다. 저는 영화 <울지마 톤즈>에서는 이태석 신부의 삶을 통해 우리가 이태석 신부가 됐을때 사회는 굉장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復活>의 핵심이에요.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하나의 기준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성직자의 성폭력 문제 권력 분쟁 세습 이슈가 나올 때마다 이태석 신부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글들이 나왔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성직자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톤즈 성당은 여기처럼 으리으리하지 않습니다. 허름한 성당에 벽은 포를 맞아서 구멍이 뚫렸는데, 사람들이 성당만 들어오면 얼굴이 밝아지는 걸 봤습니다. 그게 바로 예수의 힘이라 생각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편집 : 김태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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