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영화 감상] 김상진과 이태석

황대권(생명평화운동가, 야생초편지 저자) | 기사입력 2023/01/25 [17:10]

[영화 감상] 김상진과 이태석

황대권(생명평화운동가, 야생초편지 저자) | 입력 : 2023/01/25 [17:10]

일주일 새 다큐영화 두 편을 보았다. 이름이 제목이다. 아마도 먹고살기 바쁜 분들에게 생소한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두 분은 우리 현대사의 좌표를 찍는데 있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가 며칠을 두고 거의 동시에 공개되었다.   <김상진>은 첫 영화이고 <이태석><울지마 톤즈><부활>에 이은 세 번째 영화이다.

 
김상진 열사의 10년 후배인 안병권이 메가폰을 잡고 3년 간의 작업 끝에 완성한 '영화 김상진'을 소개하고 있다.
김상진 열사의 10년 후배인 안병권이 메가폰을 잡고 3년 간의 작업 끝에 완성한 '영화 김상진'을 소개하고 있다.

 

김상진은 서울농대 축산과 학생으로 1975년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항거하여 할복자살한 민주화 열사이다. 박정희는 1972년 영구집권을 목적으로 유신체제를 선포하고 청년학생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2년 뒤 <민청학련사건>과 함께 청년학생들의 배후에 북한 간첩조직이 암약하고 있었다며 <인혁당재건위> 사건을 조작 발표한다.

그리고 197548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자마자 18시간 만에 인혁당사건 관련자 8명을 전격적으로 처형한다. 한국 사법 사상 가장 끔찍한 사법살인으로 기록되는 날이다. 이 소식을 접한 서울농대 김상진 학형은 1975411일 농대 교정에서 박정희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을 낭독하고 자진 할복한다. 당시에 같은 대학 2년 생이었던 나는 그 사건의 충격으로 운동권의 자장에 갇혀버리고 만다. 사건 한 달 뒤 522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일군의 학생들이 김상진열사 추모장례식을 열었다가 모두 잡혀간다. 당시 법대 신입생이었던 박원순도 얼떨결에 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적당한다. 영화 속 박원순의 인터뷰 장면은 보는 이의 가슴을 더 찢어지게 만든다. 영화는 김상진 열사의 10년 후배인 안병권이 메가폰을 잡고 3년 간의 작업 끝에 완성했다. 감독이 전문 영화인이 아니지만 시대적 고증과 함께 죽음으로 알리고 싶어했던 열사의 메시지를 충실히 담아냈다.

 

 

이태석은 내전으로 망신창이가 된 남수단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47세의 나이로 암에 걸려 선종할 때까지 온몸을 바쳐 인류애를 실천한 가톨릭 사제이다. 신부님은 당신이 갖고있는 어마어마한 탈렌트를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었던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남김없이 쏟아붓고 가셨다. ‘열정순수하느님 사랑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삶이다. 가톨릭 신자로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김상진과 이태석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충실히 살다간 위인이다. 시대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 짧지만 치열하게 살다간 이들의 삶은 밍밍하게 떠밀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선방의 죽비 같은 존재이다.

- 황대권(생명평화운동가, 야생초편지 저자)

 

<남수단의 슈바이처~이태석사제 생애>

2000427일 종신서원을 하고, 2000628일 로마에서 부제서품을 받았다. 2001624일 서울 구로3동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 아프리카를 향해 선교사로 출발하여 127일 아프리카 남부 수단 와랍 주 톤즈에 부임한다. 그곳에서 가난과 기아, 질병 등으로 도탄에 빠진 마을의 참상을 보게 되고,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겸한 의료봉사활동과 구호운동에 헌신한다. 병실 12개짜리 병원을 짓고, 진료소를 만들어,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보며 인근 80여개 마을의 순회진료와 예방접종도 했다. 학교를 만들고, ··고교 12년 과정을 꾸려 수학과 음악도 가르쳤다. 기숙사도 짓고 톤즈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악기도 가르쳤다.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나환자(한센인)들의 신비스러운 힘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

— 이태석,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그러나 200811월 한국에 휴가차 잠시 입국하였을 때, 대장암 4기를 진단받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암투병 끝에 2010114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새벽 535분에 살레시오회 형제들과 가족들 그리고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종하였다(향년 48). 유해는 전라남도 담양군 천주교 공동묘역 살레시오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그의 이야기는 살레시오회 잡지 살레시오 가족, 까리타스 수녀회의 생활성서에 연재되었고, 친구가 되어주실래요라는 단행본으로도 소개되었다.

   ---------------------------------------------------------------------------------------

  영화 이태석

영화 ‘이태석’(감독 이우석, 제작 드림채널)은 남수단에서 사랑과 헌신의 씨앗을 뿌린 이 신부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곳에서는 여전히 그 씨앗이 싹 틔워 사랑과 희망을 퍼뜨리고 있는 모습을 전한다. ‘이태석’에서는 그동간 이태석신부를 다룬 영화들에서 공개되지 않은 그의 모습, 특별히 인간미 넘치는 모습과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 제자들과 주민들이 지금까지 그를 어떻게 추억하며 또 다른 씨앗을 뿌리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2020년 이 신부 선종 10주기를 기념해 2019년부터 제작한 영화는 코로나로 4년 가까운 준비 기간을 거쳐 올해 1월 14일 13주기를 앞두고 탄생했다. 영화에서는 제작진이 톤즈에 직접 가서 만난 이 신부를 사랑하는 이들의 현재와 이 신부를 따라 의사로서 길을 차근차근 한국에서 걷고 있는 제자 존 마옌, 이 신부에게 바람 속에서 고해성사를 보던 로즈의 근황 등 그가 뿌린 사랑이 퍼지고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살레시오회 소속 선교사 사제 겸 의사로 아프리카 수단 남부(현재는 남수단)의 와라주에 있는 마을인 톤즈의 돈보스코 미션에서 교육활동과 의료활동을 펼치다가 대장암 투병 끝에 2010년 1월 14일 선종하였다.

------------------------------------------------------------------------------------

 불교 신자가 본 예수


우리는 사랑의 화신으로 살다간 남수단의 슈바이처라 불린 故 이태석 신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톤즈>를 알고 있다. 
그 영화에 이어 <復活>이란 이름으로 영화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이태석 신부가 48세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지 10년 뒤 어린 제자들이 성장하며 벌어진 기적을 조명한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를 연출한 구환 감독은 기독교도 천주교 신자도 아닌 불교 신자였다.

그는 은퇴 자금을 털어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불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사제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를 연이어 제작한 것이다 
그는 시사 고발 PD 출신임에도 따뜻한 사랑을 담은 영화를 제작한 이유를 말했다

“영화 <울지마  톤즈>에 이어서 영화 <復活>을 제작하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었나요?
이태석 신부의 형 이태영 신부가 지난 2019년에 59세의 나이로 선종 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깡마른 모습으로 저를 불러 두 가지 유언을 남기셨어요 
하나는 이태석 재단을 계속 이끌어가 달라 다른 하나는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에 동생의 삶을 정리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삶을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던 차에 이태석 신부가 남 수단에 작은 학교를 짓고 가르쳤던 어린 제자들이 생각났습니다.

남 수단에 찾아갔더니 의사이거나 의대생이 된 제자가 무려 57명에 달했습니다. 
남수단의 작은 톤즈 마을에 신부님이 지은 허름한 학교에서 6년만에 국립대 의대생 57명이 나온 것입니다. 그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공무원 대통령실 경호원  언론인까지 모두 70명의 제자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 신부님 때문에 의사가 됐고 신부님처럼 살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제자들이 병원에서 진료하는 모습을 보니 먼저 어디가 아프세요  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환자 손부터 잡는 거예요. 가는 곳마다 손을 잡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 진료를 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이태석 신부님이 해오던 진료 방법입니다 라고 답하더군요. 아이들이 신부님의 삶을 그대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기뻐서 영화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이태석 신부 제자들이 한센인 마을에 가서 봉사 진료를 했어요. 60명 정도 사는 마을인데, 환자 300명 정도가 모였어요. 의사가 없으니 주변 마을에서 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거예요. 
제자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밥을 굶으며 진료를 했어요. 어느 환자는 12년만에 진료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환자에게 의사가 당신 손을 잡았을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이태석 신부님이 저희 곁에 돌아온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제자들은 신부님이 우리 옆에 계신 것 같았습니다. 신부님 일을 우리가 대신해서 너무 기쁩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단순히 제자들이 좋은 일을 했다는 게 아니라 이태석 신부의 사랑의 표현이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가는구나 바로 이것이 復活의 의미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영화 제목은 <우리가 이태석입니다> 였는데 그 자리에서 제목을  <復活>로 바꿨습니다. 
제가 이태석 신부에게 빠져든 것은 단순히 그 분의 봉사 때문이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간 방식 때문이었어요. 그것을 우리 사회에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한센병 환자들은 고통 속에서도 신부님 이야기만 꺼내면 환하게 웃었습니다. 
저는 이태석 신부를 존경스럽게 만들거나 그를 보고 감동받게 하려고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살았던 삶은, 누구든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영화 <울지마 톤즈>에서는 이태석 신부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幸福한 삶인가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하심의 리더십과 경청하고 공감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실천이 이태석 신부의 생애였지요.
영화 <울지마 톤즈> 에서는 이런 삶에서 감동을 느낀다면 일상에서 실천해 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이태석 신부의 삶을 따랐고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뒤 이태석 신부와 같은 삶을 사는 감격스러운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우리가 이태석 신부가 됐을때 사회는 굉장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復活>의 핵심이에요. 
저는 최고로 행복한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삶은 뜻대로 안 되고 불만 투성이었을 텐데 말이죠. 그 분을 통해 이야기하며 즐겁고 하는 일에 굉장히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태석 신부에 관한 휴먼 영화 종교 영화를 제작하게 되셨습니까?
사람들은 이 영화 <復活>이 종교 영화라고 부르지만 이건 굉장히 강한 고발 영화예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고발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해도 누군가를 변화 시키는 건 어려웠는데 이 영화를 통해 많은 분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하나의 기준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성직자의 성폭력 문제 권력 분쟁 세습 이슈가 나올 때마다 이태석 신부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글들이 나왔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성직자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부 의료진들과 교사들 정치인들에 관한 사회적 문제가 터져 나올 때에도 의사로서 교육자로서 지도자로서의 바람직한 상으로 귀감이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영화 흥행보다도 이런 부분에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감독님은 불교 신자라고 들었습니다. 카톨릭 사제인 이태석 신부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계속 제작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종교의 역할이 무엇일까요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希望)을 줘야 하는데 이태석 신부는 그 삶 그대로였습니다. 법복 입은 스님이든 예복 입은 목사든 사제복을 입은 신부든 종교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신부님의 삶을 보며 그것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정진석 추기경이 감사패를 주신다고 해서 방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화 중에 제가 '저는 톤즈 마을에서 예수를 보았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상하잖아요  불교 신자가 예수님을 보고 왔으니까요.
당신이 본 예수는 어떤 분이었습니까?라고 물으시기에 제가 본 예수님은 대단한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제 마음에 있는 분이었습니다. 

톤즈 성당은 여기처럼 으리으리하지 않습니다. 허름한 성당에 벽은 포를 맞아서 구멍이 뚫렸는데, 사람들이 성당만 들어오면 얼굴이 밝아지는 걸 봤습니다. 그게 바로 예수의 힘이라 생각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한 신부의 고결한 삶이 세상을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톤즈를 통해 이태석 신부의 예수적 삶과 같은 모습을 보며 감동과 감명을 받습니다. 그분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병마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안타깝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 기적을 만들어낸 이태석 신부를 추모합니다.

 

       편집 : 김태희 편집장

 

 

  • 도배방지 이미지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