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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사법화는 정치 기능 상실한 국회의 직무유기 때문이다

도편추방은 심증만 가지고 무조건 추방하는 제도국회의 직무유기는 부패 위정자를 탄핵하지 않는 것국회가 안 하면 국민투표로 하도록 국민소환제도 입법해야헌법재판소 재판관도 탄핵 대상이재명의 ‘패자 검찰 소환론’은 국회의 기능에 대한 무지의 소산

최자영(전 부산외국어대 교수) | 기사입력 2023/02/19 [12:06]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 기능 상실한 국회의 직무유기 때문이다

도편추방은 심증만 가지고 무조건 추방하는 제도국회의 직무유기는 부패 위정자를 탄핵하지 않는 것국회가 안 하면 국민투표로 하도록 국민소환제도 입법해야헌법재판소 재판관도 탄핵 대상이재명의 ‘패자 검찰 소환론’은 국회의 기능에 대한 무지의 소산

최자영(전 부산외국어대 교수) | 입력 : 2023/02/19 [12:06]

고전 민주주의의 온상인 고대 그리스에서는 도편추방제도가 있었다. 종이가 없던 시절이라 사금파리[도편(陶片), 깨진 사기그릇 조각]에다 싫어하는 위정자 이름을 적어서 투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6천 표 이상을 받은 이는 10년간 추방된다.
 
그런데 도편추방은 증거나 조사가 필요 없다. 심증으로 무조건 추방된다. 증거도 없이 누구를 추방하는 것이 사뭇 불합리하고, 또 추방당하는 측에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무조건 추방하는 이유는 정치권력이 잘못 쓰이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예방을 하는 것이다.

 

권력 가진 이가 증거 내놔라 하고, 자기는 그런 일 한 적 없다고 무조건 발뺌하면서 버티고, 오히려 그 권력을 이용해서 증거를 인멸하면 치명적이다. 권력 자체가 민중의 삶,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흉기가 되기 때문에, 이런 경우 권좌에서 먼저 내쫓고 본다. 증거 찾기나 조사는 뒷일이다.
 
검찰이 대통령 윤석열 가족을 방어하기 위해 고발사주했다는 혐의가 보도되었다. 그런데 보도 당일 대검찰청에서 야간에 25대 컴퓨터 포맷(초기화로 자료 지우기)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 컴퓨터는 불과 2주 전에 새로 교체된 것이라고 한다. 민주당은 이것을 두고 검찰의 조직적인 은폐와 사건조작“이라고 주장했다.(뉴스버스, 2022.12.19.)
 
이런 경우, 도편추방제도에 따르면, 관련자들을 무조건 추방부터 한다. 의심이 가면 권좌에서 무조건 추방해버리는 것이다. 무조건 추방이란 사법절차를 밟지 않는다는 뜻이다. 민중의 결정과 투표는 사법절차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이다. 자칫 비수가 될 수 있는 권력, 그 권력의 악용을 막기 위해서는 조사와 증거 찾기 등의 사법절차가 아니라 민중의 결정을 통해 정치적으로 해결한다. 민중의 도편추방에 해당하는 것이 현재 대의제 국회가 가진 탄핵제도이다.
 
국회에서 행안부장관 이상민에 대한 탄핵을 가결했다. 그랬더니 헌법재판소에 가면 기각되어 탄핵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소리가 벌써 나온다. 주지하듯이, 헌법재판관 9명은 선출직 아닌 임명직 관료이다. 9명 관료가 국민이 선출한 의원들로 구성된 국회의 결정을 깡그리 무시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9명 헌법재판관의 과두체제 국가가 되어 버렸다. 이른바 ‘헌법 재판’을 한다는 명분을 두른 이들이 국회 위에, 그래서 국민 위에 군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헌법 재판’을 항시 바르게 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이들을 견제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국회의 탄핵이다. 헌법재판관이 헌법 재판을 잘못하면 국회에서 다시 탄핵해야 한다. 만일 국회에서 헌법재판관을 탄핵하지 못 한다면, 이들은 초법적인 존재가 되므로 위헌이다. 민주국가에서는 누구도 법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이름으로 국회에서는 헌법재판관들이 잘못 결정한 것으로 간주하여 탄핵할 수 있다. 이때 헌법재판소와 국회의 결정은 그 성격이 크게 다르다. 헌법재판소 결정은 사법의 영역이나, 국회의 탄핵은 정치적이다. 정치적이라 함은 증거나 법 논리를 초월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정치권력이 잘못 쓰이지 않도록 예방하는 기능은 지나간 잘못을 가지고 다투는 사법 절차만 가지고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이 판사로서 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탄핵되었는데, 이것이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되어 국회결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지금 행안부장관이 국무위원 신분으로 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탄핵되어, 다시 사안이 또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임성근 탄핵을 각하한 이유는 죄가 소명(인정)되지만, 이미 사표를 냈기 때문에 실익이 없다는 취지였다. 이런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권력이 잘못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예방의 사법적 기능을 원천적으로 포기한 것이다. 앞으로 법관은 어떤 비리를 저질러도 사표만 덜렁 내버리면 탄핵의 위험을 벗어날 수가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탄핵은 각하되고, 풀려날 것이기 때문이다. 판사들의 불법 사법농단의 길이 무한하게 열리게 될 전망이다.
 
이탄희 의원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한 해에 20-30명 정도의 법관이 탄핵 된다고 한다. 권력에 대한 견제가 이렇듯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영국은 한국과는 풍속도가 사뭇 다르다. 한국은 행정부, 판사, 검찰 등의 불법과 횡포가 만연해 있다. 그 근원적 원인은 국회에 있다. 국회가 위정자의 비리, 불법, 상식을 벗어난 재판 등을 견제할 수 있는 탄핵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고유의 기능을 포기함으로써 직무유기하고, 스스로의 위상을 뭉개고 사법 및 행정기관에 종속되기를 자처하고 나섰다.
 
검찰이 없는 죄 만들고 있는 죄 뭉개고 있다고 생각되면 바로 탄핵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 고민정과 박홍근 등은 직접 뛰는 선수가 아니라 한발 물러선 논평자 같다. 실질적 조치는 취하지 않고 하고한 날 관전평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건희는 왜 수사 안 하냐?”, “언제 부를 거냐?”, “윤석열 존재 자체가 사회를 위협한다” 등 취지의 발언이 그러하다. 관전평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수사 바로 안 하는 검찰, 사회의 위협적 존재 등을 바로 탄핵하지 않으면, 그 피해의 가능성이 국민 민초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국회를 행정부의 아류로 전락시켜 버렸다. 의원으로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개념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국회가 검찰과 대통령의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듯 하다. 그 증거가 “(대선) 패자이기 때문에 부득이 검찰에 소환된다”는 패배자의 논리이다.
 
이재명의 패자 논리는 이중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검찰의 “없는 죄 만들어내기”가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개인적 문제로 파악한 것이 그러하다. 그렇지 않다. 검찰의 비리는 ‘대선’과 무관하게 조직 자체가 갖는 비민주적 상명하복의 생리에서 나오는 것이고, 또 이재명뿐 아니라 모든 민초들이 같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둘째, 이재명은 자신이 대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검찰에 자꾸만 불려 다닌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대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재명의 대통령 중심적 사고를 반증하는 것이고, 국회가 어떻게 검찰 권력을 견제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미진하다는 반증이다. 검찰이 부당하게 없는 죄 만들고, 있는 죄 뭉갠다는 심증이 들면, 탄핵에 나서면 된다. 그러나 국회의 기능 및 의원으로서의 자신의 책무는 뭉개버리고, 해바라기처럼 대통령이 있는 용산을 바라보고 있다. 이재명이 대통령 4년중임제 개헌을 들고나온 것도 그 같은 맥락이다.
 
국회의 정치적 결정과 헌법재판소의 사법적 결정이 서로 충돌하면, 그 최종 결정은 국민투표로 해야 하겠다. 차제에 국회는 선거제도 운운할 것이 아니라 국민투표제도의 입법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 행정안전부장관 탄핵 결의에 즈음하여 9명 임명직 헌법재판관이 국회의 탄핵 결정을 뭉개는 비민주적 과두체제가 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은 국민의 뜻과 민주정치를 배반하는 것으로 위헌이다.
 
전 대통령 문재인은 민주주의가 법치주의와 짝을 이룬다고 보았고, 법치주의가 국가권력을 제약하는 원리라고 보았다. “한국 법학은 법의 정신과 본질에 관한 법철학의 기반 없이 개념법학과 법해석학의 범주에 머물러있다. 누구나 법치를 말하지만, 정작 민주주의와 짝을 이루는 법치주의가 국가권력을 제약하는 원리라는 인식은 부족하다“고 한 것이 그러하다.
 
그러나 문재인의 이 같은 이해는 두 가지 다 틀렸다. 첫째, 민주는 법치와 짝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 속하며, 법치를 능가하고 법치 위에 존재한다. 그래야 ‘주인’인 ‘민’이 법을 바꿀 수 있게 된다. 만일 법치가 ‘민주’ 위에 놓이게 되면 누가 법을 만드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법치 만능주의는 민주가 아니라 언제라도 독재와 짝을 짓는다. 마치 현재 한국 대통령 윤석열이 법치, 공정, 상식을 무지 강조하는데, 그 법치는 민중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수단인 동시에 자신은 초법적 존재인 듯한 인상을 풍기는 것과 같다. 민(民)의 결정은 법치 위에 존재하고, 언제나 그 법을 민초가 스스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국가의 권력을 제약하는 개념은 ‘법치’가 아니라 ‘민주’이다. 법치는 사법 영역이지만, 민주는 정치의 영역이다. 권력의 제약은 사법의 영역을 벗어나,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가능하다. 정치의 영역은 조사와 증거가 불필요하고 심증만으로 의심이 가는 이를 권력에서 추방할 수가 있다. 권력 악용의 예방은 사회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로서, 개인의 사사로운 억울함에 우선한다.
 
한국 정치의 사법화는 국회 때문이다. 국회 자체가 정치적 기능을 상실하고 사법부에 종속되면서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제 기능도 자각하지 못하고 직무유기하고 있다. 혐의가 있는 자는 그 가능성만으로도 바로 탄핵부터 해야 하고, 여기에 수사하고 증거 찾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민주는 권력의 악용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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