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수, 세비, 선거구제를 국회에서 제멋대로 하면 안 돼무책임한 홍보, 중대선거구제가 다당제 보증하는 것 아니다여론조사만 말고 주요 안건은 국민투표 거치고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회에 위임할 수 있다”로 고쳐야
최자영(전 부산외국어대 교수)| 입력 : 2023/03/0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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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개특위(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역구 축소에 반대하는 현역의원들의 반발을 고려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시행하려면 의원정수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이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29.1%에 그쳤고 반대 의견(57.7%)이 훨씬 많았다. 또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현행 소선거구제가 한국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응답(37%)과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응답(36.1%)이 팽팽히 맞섰고, 소선거구제(40.5%)와 중선거구제(39.7%) 선호도는 엇비슷했다.(한겨레, 2023.2.14.)
그런데 정개특위는 이번 여론조사에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해 이달 안에 복수의 선거제도 개혁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하고, 국회의장 김진표는 이를 기반으로 다음 달 국회의원 전원위원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또 정개특위 위원장 남인순은 “이번 (여론)조사로 국민 대다수가 국민의 다양성 반영과 정책 국회로의 발전을 위해 현행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단다.(한겨레, 2023.2.14.)
여기에 함정이 있다. 첫째, 전문가 의견을 종합한다는 것이 그러하다. 그 뜻은 전문가의 이름을 빙자하여 민의를 무시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둘째, 남인순이 “국민 대다수”가 “현행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평가”한 것으로 뭉뚱거리고, 또 그 선거제도 개편이 “국민의 다양성 반영”과 “정책 국회로의 발전”을 위한 것으로 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회 중심의 안경을 끼고 윤색하는 것이 민의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는, 한편으로 의원정수 확대 반대가 압도적이었고, 다른 한편으로 현행 소선거구제에 대한 찬반이 거의 차이가 없었고, 또 소선거구제와 중선거구제의 선호도도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국회가 말하는 “현행선거제도 개편”, “국민의 다양성 반영”, “정책 국회로의 발전”은 현재로서 소선거구제 폐기, 의원정수 확대를 포함할 수도 있는 것으로 전망되고, 그 가능성이 농후한 것 같다.
실제로, 국회는 전문가의 의견을 빌미로 중대선거구제를 밀어붙일 작정인 것 같고, 여기에 언론을 통한 홍보까지 동원되고 있다. 그 한 예가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 주최의 국회 토론회에서 소선거구제 폐지, 의원정수 확대 의견이 나온 것이고, 이것을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선 것이다.
한겨레신문에 “진보·보수 단체 ‘소선거구제 개편·의원정수 확대’”(2023.2.13.)라는 표제의 글이 실렸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 주최로 여야 의원 141명이 참여하여, 열린 ‘시민단체 초청, 정치개혁 국민과 함께’ 토론회(2.13일)가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300여 개 보수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범시민사회단체연합(범사련)’ 쪽 패널 3명과 692개 진보 시민사회단체가 구성한 ‘2024 정치개혁공동행동’ 쪽 패널 3명,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 소속 여야 의원 36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300여 개 보수, 692개 진보 시민단체의 이름을 앞세우고, 각기 3명씩 참석했다고 하니 총 6명이 이 거대 시민단체의 대변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6명은 그냥 시민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냥 개인의 의견을 말한 것일 뿐, 그 의견이 그 수백 개 되는 시민단체 의견을 명실공히 대변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국회 및 언론은 그 6명이 보수와 진보 시민단체의 뜻을 각각 대표하는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들 6명이 단체 대표가 아니라 개인 의견을 표명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첫째, 이 6명은 그 수백 개 거대 시민단체들의 의사를 집합하는 절차를 거쳐서 나온 이들이 아니다. 둘째, 국회에서 열리는 토론회이므로, 모두가 아니라면 적어도 다수가 국회가 입맛에 맞게 교섭 초청한 인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황은 이른바 보수, 진보를 아우르는 시민단체 대표 6명이 낸 의견이 위 국민 대상 여론조사와 상반하는 것에서도 반증이 된다. 국회는 이른바 수백 개 시민단체의 이름을 빌어 시민 민초의 뜻을 배반하면서 원하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고, 거기다가 전문가의 이름까지 동원하여 정당성을 더함으로써, 민의를 배반하려 한다.
이 토론회에 보수 쪽 토론자(패널)로 이기우(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나와서 소선거구제를 두고 극복해야 할 폐단이 있는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기우는 “소선거구제는 어떤 식으로든 개편되어야 한다”, “중대선거구 비례대표제와 한 선거구에서 최소 3명, 가능한 5명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 다수대표제가 바람직하다” 등 취지의 발언이 그러하다. 또 그 목적이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관리 대신 국가 현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이기우는 짐짓 전문가 신분에 빗대어, 소선거구제와 중선거구제에 대한 선호도가 비슷한 민의를 배반하고 있고, 또 지역구 위에 국가 현안을 위치시킴으로써 지역을 괄시하고 있다. 이 같은 그의 발언은 줄곧 직접민주주의를 연구해온 그의 경력과 배치되는 면이 없지 않다.
진보 쪽 토론자인 박석운(정치개혁공동행동 공동대표)은 “의원정수 확대도 적극 논의되어야 한다”, 또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고려해 “필요한 재원 부담 절감을 위해 입법보좌관 의원 공동 활용제나 의원보수액 총량제 등을 고려해야 한다” 등 제안을 했고, 또 김진영(더불어민주당 전문위원)은 민주당의 지난 대선 공약이 비례대표 확대와 위성정당 금지라며 “이를 위해 의원정수 확대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등 제안을 했다고 한다.
박석운과 김진영은 의원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민의를 배반하고 있다. 또 의원보수액 총량제로 재원 부담을 절감하자고 했는데, 그 재원의 절감은 의원정수 증감 문제와 반드시 맞물리는 것이 아니다. 의원정수와 무관하게 한국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지나친 특권은 그 자체로서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의원정수 증감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국회가 가진 권한 자체가 너무 비대하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 의원정수나 보수를 국회에서 제멋대로 결정하고, 거기에 대한 견제장치가 현재로서 없다.
이렇듯 꺼벙한 선동성 토론회를 두고, 국회에서는 3월 안으로 정파를 초월한 선거제도 개혁 합의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일택(범사련 기획위원장)은 “표의 등가성 보장과 승자독식 기득권 구조 타파, 특정 정당에 의한 지역 정치 독점으로 인한 공천 문제점 개선과 유권자 참여 확대를 원칙으로 하는 진보와 보수의 선거제도 개편 합의안을 3월 안에 국회에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선거제도 개편안이 구체적으로 나온 것도 아닌데, 앞으로 나올 개편안은 무조건 긍정적 효과를 가진 것으로 일괄 도배하는 상징적 발언이다. 선거제도를 개편하면, 무조건 “표의 등가성 보장”, ”승자독식 기득권 구조 타파“, ”특정 정당에 의한 지역 정치 독점으로 인한 공천 문제점 개선“, ”유권자 참여 확대“가 현실화하나 어떻게 개편될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마당에 어떻게 이런 결과가 초래된다고 단언을 하나?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그런 이상적인 결과가 실제로 나오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선거제도를 개편하고 싶다는 국회의 소망을 이런 식의 사탕발림으로 표현한 것뿐이고. 그 소망은 물론 민의를 배반하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의원정수 늘리는 데 압도적으로 반대했고, 소선거구제와 중선거구제에 대한 선호도에서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대선거구제는, 선전하는 바와는 달리, 반드시 다당제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한겨레, 2023.1.27.)
이렇듯, 명색이 ‘대의’라고 하나 실제로는 민의를 정확하게 배반하는 국회의 과두적 지배에 반발하여, 사회 일각에서는 민초의 직접 결정권과 공직자 처벌권(소환권)을 제도화하기 위해 정당 결성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한 예로 <한국직접민주당> 결성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는 김시중 대표는 헌법 제40조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법권은 국회에 있다”를 “입법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회에 위임할 수 있다”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민 민초의 뜻을 왜곡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회를 국민의 뜻에 따르는 국회로 바꾸자는 뜻이다.
현행 1987년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것은 수사(修辭 헛소리)에 가깝다. “어디서 나온다”고만 하고, 그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절차 관련 내용이 거의 없다. 이것은 독재 유신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와 같은 맥락이다. 지금도 국민 민초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자신의 뜻을 대의(代議)해 줄 사람을 뽑을 뿐이고, 직접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뽑힌 이들이 민초의 뜻을 대의하지 않고 번번이 깔아뭉갤 때도, 그들을 처벌할 제도조차 구비되어 있지 않다.
개헌 혹은 정치개혁의 기치는 편협하게, 국회의 필요에 따른 선거구제(중대선거구제) 개편, 국회의원 정수, 세비의 증감, 의원내각제 등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헌법 1조의 국민 주권론이 헛소리가 되지 않도록 국민투표 제도를 현실화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다.
국회뿐 아니라 대통령도 국민 아래 두어야 하겠다. 그래서 헌법 제72조를 고쳐야 한다. 현재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를 “국민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개헌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고, 그 부의는 원칙적으로 국민(유권자 2%의 발안)에 의하나 국회(유권자 1/10 해당 의원 2정수)와 대통령에게 위임할 수 있다”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검찰의 편파수사,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법원의 판결, 졸속으로 밀어붙이는 대통령의 시행령 등을 보면, 한국은 민주국가 아닌 관료들의 과두국가이다. 과반수 의석을 가졌으나 미적거리고, 이 같은 공직자 탄핵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계속 꽹과리 소리만 요란하게 내고, 그런 가운데서도 선거제도에만 목매고 있는 국회를 보노라면, 이게 민의를 대변하는 기관이 도무지 아닌 것 같다. 그것도 자기네 입맛에 맞는 이른바 보수, 진보 시민단체의 이름을 팔고 언론을 동원하여 민의를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의는 허황한 언론조사 형식을 빌어 운운할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국민투표로 현실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