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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해소하는 소통문화가 발달하려면-1

도영인 (현 한영성코칭 대표, Deep Change, | 기사입력 2023/03/16 [16:44]

갈등을 해소하는 소통문화가 발달하려면-1

도영인 (현 한영성코칭 대표, Deep Change, | 입력 : 2023/03/16 [16:44]

필자는 '민주시민들이 앞장서 촛불혁명을 이룬 대한민국에 어처구니없게도 다시 불통의 정부가 들어선 것'을 개탄했습니다. "윤 정부의 독단적인 통제에 대응하기 위한 초비상 시민저항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한 필자는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적대자들 간의 진정성 있는 대화가 없이 막무가내식 불협화음과 불통 현상이 심해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비상시국'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문제의 해법으로 '먼저 의사소통의 불통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필자는 이를 위해 1, 고질적인 '불통'에서 경청하는 집단지성으로 2, 공익을 확장하는 경청능력과 소통문화 3, 인본주의적 지도자 자격 4, 영성적인 지도력과 소통능력 5, 경청하는 민주복지사회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에 3회에 걸쳐 글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갈등이 심각해진 요즘 한자리에 모인 친척이나 동창, 친구를 만나서 정말 편한 마음으로 행복한 대화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불행히도 요즘 정신건강이 좋고 ‘공정과 상식’을 일상에서 성실히 실천해 온 사람일수록 세계관이 전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울화가 치미는 걸 많이 느끼는 것 같다. 만약 ‘친한 사이일수록 종교나 정치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는 일반적인 충고를 각종 만남의 자리에서 잘 따른 경우라면, 행복한 시간은 아니었더라도 적어도 씁쓸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와 같이 평정한 마음으로 건강한 대화를 나누고픈 갈증을 느끼는 일이 자연스럽지 않은 일인가  다른 의견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 경우라면, 상대방과의 갈등을 피하려는 목적만으로 무조건 대화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우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의견에 대한 개방성이나 경청하는 자세를 보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상황이 2022년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더욱 심해졌다. 최근 한국일보에 보도된 기사에 의하면, 국민 10명 중 6명은 윤 정권 출범 이후로 집단갈등 수위가 정권교체 전보다 높아졌다고 느낀다. 민주시민들이 앞장서 촛불혁명을 이룬 대한민국에 어처구니없게도 다시 ‘불통’의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독재체제에 맞서 많은 젊은이가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해 놓은 민주사회질서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검찰 세력의 노골적인 정치개입행태로 인해 극심한 불만족을 느끼는 민주시민들 사이에서 윤 정부의 독단적인 통제에 대응하기 위한 초비상 시민저항의 필요성을 말하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다. 오죽하면 젊은 시절에 이미 민주화운동에 앞장서 개인적으로 큰 고초를 겪은 80대 ‘원로’들까지 다시 시국 비판을 하겠는가. 책임성 있는 언론 보도와 건전한 의사소통이 결핍된 가운데 기득권의 ‘밥그릇’ 싸움이 더욱 치열해진 느낌이다.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적대자들 간의 진정성 있는 대화가 없이 막무가내식 불협화음과 불통 현상이 심해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비상시국’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적 맥락에서 서로 복잡하게 뒤엉킨 한국사회의 제반 사회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의사소통의 불통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사회의 꽉 막힌 현실이 매우 심각하다는 걸 먼저 인정하고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서로 다른 사람이나 그룹과의 갈등을 끌어안을 수 있는 근원적인 소통방식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말로만 되뇌는 협력이나 협치를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쉽게 습관적으로 빠져드는 ‘편 가르기’ 패턴을 털고 나와야 하겠다. 일단 모두가 부분적으로 옳다는 관점을 가지면 도움이 될 것이다.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코끼리 장님 만지기식’ 대화에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전체적으로 볼 때 정확한 답을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지만, 개별적으로는 부분적이나마 모두 맞는 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코끼리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협력적인 퍼즐 맞추기가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 서로의 주장을 경청하는 일은 필수요건이다.

고질적인 ‘불통’에서 경청하는 집단지성으로

  우리나라에서 ‘불통’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된 후로 경청의 중요성이 사회적 차원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남의 말을 듣고,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그룹의 의견을 좀 더 잘 이해하려는 문화적인 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조직적인 노력이 2015년에 본격화되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경청대화모형’의 개발과 함께 ‘경청대화지수’도 개발됐다. 이 경청지수에 의하면, 소통이 잘되는 대화는 대략 ‘경청하기,’ ‘이해 돕는 말하기,’ ‘예의 지키기’의 세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필자는 이 세 가지 영역에서 과연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통찰해 본 적이 있다. 사회복지전공자로서 경청하는 건 비교적 잘하고 있는 듯하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원치 않는 충고를 주는 버릇이 아직도 조금 남아있다. 은퇴 후로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인내심 있게 들어주고 상대방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말을 잘 나누지만 그래도 의사소통기술이 탁월하다고 스스로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만큼 언어를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각자의 세계관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된 언어 경험과 언어사용 습관이 다른 가운데 상대방이 내가 의도한 그대로 정확히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사실 무리한 일이다.
  개인적인 소통기술은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할 뿐만이 아니라 직장 내 협력과 정치적 담론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소통문제 연구자들에 의하면 한국 사회에서 남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하는 것은 일반인들 대부분이 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이 분야의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실제 사회경험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대화라기보다는 충동적인 말로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는 반면, 상대방의 의견에는 대부분 귀를 닫고 산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흔히 사용하는 그룹 카톡방에서조차 다른 사람이 공유하는 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글만 올리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없이 대립 되는 요구와 주장, 그리고 이질적인 가치관과 소통 스타일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저절로 조정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한 사회의 문화적 흐름 속에서 함께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우선 언어를 통해 상대방이 말한 의도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특별히 좋아한다거나 존경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인격적인 대화는 이루어져야 한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끼리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은 교육이나 직업적 배경의 문제라기보다 성격이나 인격발달과 관련된 언어사용습관 문제로 볼 수 있다. 여러 면에서 자신과 다른 성향의 상대를 무조건 무시하거나 적대시하는 불통 현상을 심층적으로 보자면 개인 심리상태의 안정감 또는 무의식적 집단의식수준이 비교적 낮은 발달단계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서로를 공감하고 함께 연대하기 위한 인간의 소통능력이야말로 점점 더 인공지능적 시스템으로 변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기계적 차원을 넘어서는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 누구나 본래 타고나는 영성(spirituality)을 부여받은 존재로서 기계가 아닌, 감정을 가진 사람들끼리 대화가 안 통하는 현상은 미래사회에 심각한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인간성을 단지 기계적으로 흉내만 내는 인공지능 로봇이 전반적으로 기계화된 사회시스템을 통해 통제력을 행사하는 미래사회를 상상만 하는 것도 끔찍한 일이다. 진정한 인류의식이 결핍된 상태에서, 감성과 영성지능적인 기반이 없이 기계적인 정보교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의사소통체제로 진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사회질서가 구심점이 되는 미래사회로 가지 않으려면 사람다운 사람들이 사람답게 소통하며 사람답게 사는 경청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서로 다른 의견이나 다양한 주장이 원활하게 교환되지 않을 때 경험하는 사회적 소외감과 심리적 단절의 문제를 필자는 일종의 ‘사회적 변비’ 현상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사회 전체를 생태적 관점에서 이해하자면 의사소통이 막힌 상황은 연대의식이 빈약하여 발생한 사회적 혈액순환의 비정상화 현상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각자 다른 개인적인 특성을 가진 몸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과 분열되어있는 존재라고 인지하는 분리의식은 물리적인 차원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요사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점점 더 자주 언급되는 양자과학적 논리, 또는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하나됨 의식을 잘 수용한다고 해도, 지구상의 삶 속에서 인간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분리의식을 극복하는 일이 쉽지 않은 과제이다. 분리된 몸으로 살면서 ‘인류 하나됨(oneness of humanity)’의식을 실천하는 일이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과제로 생각될 수도 있다. 아무리 신체적 정체성보다 영성적인 내면의식을 중시하고, 신체기능은 임시 생존수단으로 보는 영성적 실제로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물질적인 세상에서 다른 생명체와의 분리의식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 적어도 3차원의 몸을 갖고 사는 현존의식으로는 불가능하다. 
  한편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인류 하나됨’ 의식의 단계는 현대인들이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식발달과제이다.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것은 단지 이상적이고 철학적인 생각이 아니고 첨단과학이 증명하는 사실이다.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이고 집단지성 차원에서 우리 인류의 삶이 모든 생명의 근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인지하는 능력이 있다. 전쟁으로 공멸하지 않으려면 서로 경청하는 소통문화를 창조하는 일은 필수이고 그 과정에서 집단지성 차원의 노력과 영성지능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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