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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해소하는 소통문화가 발달하려면-3

도영인 (현 한영성코칭 대표, Deep Change, | 기사입력 2023/04/04 [10:29]

갈등을 해소하는 소통문화가 발달하려면-3

도영인 (현 한영성코칭 대표, Deep Change, | 입력 : 2023/04/04 [10:29]

필자는 '민주시민들이 앞장서 촛불혁명을 이룬 대한민국에 어처구니없게도 다시 불통의 정부가 들어선 것'을 개탄했습니다. "윤 정부의 독단적인 통제에 대응하기 위한 초비상 시민저항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한 필자는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적대자들 간의 진정성 있는 대화가 없이 막무가내식 불협화음과 불통 현상이 심해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비상시국'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문제의 해법으로 '먼저 의사소통의 불통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필자는 이를 위해 1, 고질적인 '불통'에서 경청하는 집단지성으로 2, 공익을 확장하는 경청능력과 소통문화 3, 인본주의적 지도자 자격 4, 영성적인 지도력과 소통능력 5, 경청하는 민주복지사회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에 3회에 걸쳐 글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영성적인 지도력과 소통능력
          
         “당신이 말을 할 때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경청을 하면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됩니다.” -14대 달라이라마

  영성이란 주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려는 목적의 설문 조사에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이 자주 떠올리는 이름들이 있다. 마틴 루터 킹, 마더 테레사, 넬슨 만델라, 마하트마 간디, 달라이 라마 등 대중이 익히 잘 아는 지도자 이름들이 거론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가장 흠모하는 지도자라고 말한다.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등 영성적 지도자들은 당연히 존경받을 분들이라서, 아니면 너무 오래전 역사 속 인물이어서 오히려 대중들이 시대적 혹은 종교적인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이 훌륭한 지도자로 인지하고 있는 분들은 하나같이 종교 배경과 무관하게 영성적인 자질을 가진 분들이라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구태여 기독교 신자가 될 필요를 못 느꼈고 개종을 거부했음에도 생전에 서구의 많은 기독교인의 존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넬슨 만델라도 종교적인 지도자는 아니었으나 마틴 루터 킹 목사나 마더 테레사 수녀에 뒤지지 않는 영성적 지도자 자질을 보여주었다. 평화와 화합 그리고 비폭력을 주장하고 실제로 이러한 영성적 삶의 원칙을 실천한 것이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은 또 어떤가  나라와 백성을 자기 몸처럼 귀하게 여겼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도자들의 공통적인 자질은 사람을 아끼는 마음과 많은 사람의 안정된 삶을 위해 아낌없이 발휘하는 탁월한 인류애이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들은 자기 자신의 안녕을 보살피기보다는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고 사력을 다하여 민중을 아끼는 마음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다 너무 일찍 타계한 이태석 신부처럼 종교적 배경을 가진 분들 가운데 타인의 복지를 염려하는 사례가 많은 것이 확실하다. 다른 한편, 특정한 종교적인 배경이 없이도 이타심과 봉사 정신이 투철한 인격을 갖춘 일반인과 연예인 또는 스포츠 선수도 많다. 사회에 공헌하는 지도자적 자질이 풍부한 사람들은 직업과 성별이나 지역과 무관하게 어느 사회에서나 발견된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더라도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권력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온갖 권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이름을 떨치는 인물일지라도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인지 의심해 볼 일이다.

  타인의 이익과 생명을 사랑하는 이타적인 성향 이외에도 지도자의 특성에 공통점이 있다면 나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일 것이다. 달라이 라마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종교적 지도자이면서도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경청하는 일이 몸에 밴 지도자가 한국에 몇 명이나 될까  정치인에게나 종교인에게나 널리 수용하고 깊이 공감하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수평적인 세계관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의견과 주장을 잘 이해하고 융합하려고 최선을 다해 공익을 추구하는 지도자는 어디에 있는가  수직적인 통찰력으로 자기 자신의 일상적인 말과 행동이 자연스러운 삶의 이치와 사회적 정의에 부합하는지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지도자는 몇 명이나 되는가? 

  그런 인물을 권력의 자리에서 찾는 대신 주변을 돌아다보면 오히려 부나 명예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며 사는, 지도자적 역량을 가진 순수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경청하는 능력만 제대로 갖추어도 오늘날 할 일 많은 한국 사회에서 지도자로서 인정받을 기본 자격을 갖춘 것이다. 한국에서도 여러 번 초청 강연을 했던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가 거듭 강조했듯이, 인류사회가 공멸하지 않으려면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긴요한 필수조건으로서,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공감하고 연대하는 일은 경청하는 기본자세 없이 불가능하다. 나와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소리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아이디어나 주장에 마음과 귀를 여는 경청능력이야말로 새로운 미래사회를 창조하는 길을 안내할 수 있는 자격요건이 된다. 

경청하는 민주복지사회를 향하여

  고통받는 사람들과 동물이나 아동을 포함하는 취약한 생명체가 내는 신음에 민감한 사람들이 19세기 말엽에 자선활동을 영국에서 처음 시작하였다. 영국의 뒤를 이어 재빠른 산업화로 자본주의 본산이 된 미국 사회의 경쟁적인 산업화과정에서 수많은 부작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극심한 불평등과 함께 피억압 계층이 증가할 때 사회적 부조리를 먼저 알아챈 사람들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중산층 여성과 성직자 계급이었다.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라 빈곤에 시달리는 이민자와 노동자의 외침에 대한 반응으로서 자원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인류애에서 출발한 자발적 자선활동이 전문직으로 발달한 역사적 사실은 타인의 신음을 경청하고 그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평범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계에서 가장 심한 불평등사회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구원할 사람들은 청력으로는 알아채지 못하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들이겠다. 기득권층에 속하지 않고 일반인들 가운데 자신의 양심과 지극히 상식적인 정의심이 만들어내는 심장박동 소리를 경청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아주 많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필자가 ‘영성과 사회복지’의 연관성에 관심을 가지고 미래지향적인 연구과제로 보기 시작한 때로부터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다. 미국에서 사회복지학 교수들이 영성의 긍정적인 영향력에 주목한 것이 30여 년 전 일이다. 자살, 폭력, 중독 등 개인 삶에 문제가 있을 때 단순히 개인의 심리상태나 사회체제의 문제로 보지 않고 좀 더 근원적인 영성과 집단의식발달의 문제로 다루게 된 것이다. 

  정치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 가운데 진정으로 전체 공동체의 복지를 염려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영성(spirituality)이란 다소 민감한 언어를 피하고 신앙(faith)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회복지서비스 프로그램을 도입한 사람은 미국의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이다. 부시는 ‘자애로운 보수주의 (Compassionate Conservatism)’라고 칭하였던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백악관 입성과 동시에 대통령 산하 직속 기관인 ‘신앙기반 지역공동체 사무국 (Office of Faith-Based and Community Initiatives)’을 2001년 초에 신설하였다. 정치와 종교가 엄격하게 분리된 헌법정신을 비교적 성실히 지키는 미국 정부가 종교적인 성격을 배제하면서 신앙(영성)에서 나오는 긍정적 영향력을 사회복지서비스에서 활용하기 위해 많은 고심을 한 것이다. 예를 들면 부시 행정부는 기독교 계통 복지시설에서 십자가를 걸 수 없다거나 포교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지키는 한, 신앙기반 복지시설에서 연방정부의 기금을 수여 받을 수 있도록 상세한 규정을 마련하였다. 

  긴급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자급자족 정신을 회복하는데 종교색을 띠지 않고, 부시 행정부는 “영성적인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입할 수 있도록 새로운 복지정책을 마련한 바 있다. 부시는 미국 헌법에 명시된 종교와 정치의 분리원칙을 지키기 위해 종교라는 언어와 달리 다소 종교중립적인 뉘앙스가 있는 ‘신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대통령 권한의 행정명령을 공표함으로써 신앙기반 (faith-based) 복지정책을 도입했다. 새로운 복지정책을 시도한 부시 대통령은 진정한 의미의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자애로운 정치인이었다고 혹자는 평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솔직히 대통령 당선에 도움은 되었겠지만, 부유한 성공회 집안에서 성장한 부시 대통령이 영성이 깊은 사람이어서 그런 획기적인 복지정책을 도입했던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부시는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기만적으로 생떼를 써가며 이라크전쟁을 감행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다른 이라크의 이슬람 사회체제를 악마화한 부시는 미국의 오일공급망을 알뜰히 챙겼다. 영성적 지도자역량과는 심히 동떨어진 위선적인 일을 했다.

  선거에서의 당선을 목적으로 성경을 장식품처럼 옆에 끼고 교회 출입하는 인물들이 대통령직을 차지한 사례들이 우리나라에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종교와 정치의 분립원칙을 강조하기보다는 적어도 일반인보다도 덜 위선적인 인물이 정치적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현재 SNS상으로 떠도는 일반인들의 한탄은 정치지도층도 심히 부패했고 존경할만한 종교지도자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가족이 가진 기득권을 지키는 일이 국회, 검찰, 법원, 행정부, 재벌기업 등 기존 권력기관에서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지도자 아닌 지도자들의 보편적인 행태가 되었다. 이중잣대로 남용되는 말이 아니라 실천 행동으로 솔직담백하게 ‘공정과 정의’를 국민에게 보여주는 정치지도자가 한국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너 죽고 나 살자 방식의 개인주의 중심 교육제도를 개혁해서 제대로 된 홍익정신을 표출하는 인물을 양육하려면 앞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중도를 외치면서 이리저리 오고 가며 얼빠진 지도자 행세하는 기회주의적 ‘정치기술자’ 내지 ‘정치업자’가 너무 많다. 입맛에 맞는 먹이를 찾아 이리떼처럼 헤매며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는 ‘수박’들의 위선이 사라지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진정한 민주시민들이 나서서 진정한 애국하는 마음으로 진정한 민주제도를 한국 사회에 확고히 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흔들리지 않는 민주공동체 정신을 젊은 층에 계속 심어주기 위해 교육제도부터 변혁하는 일은 정말 시급한 일이다. 그런 교육제도의 변혁이 가능해지려면 우선 의견을 달리하는 부모와 교육자, 정책담당자, 그리고 학원 등을 운영하는 이익집단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결국, 한국의 희망적인 미래는 경청하고 소통할 줄 아는 시민들의 민주역량에 달려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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