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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넘어 퀴어 해(海), 무지개 인천”

인천 부평시장 로터리에서 열린 제6회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을 찾다

구광숙 | 기사입력 2023/09/13 [11:23]

“차별을 넘어 퀴어 해(海), 무지개 인천”

인천 부평시장 로터리에서 열린 제6회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을 찾다

구광숙 | 입력 : 2023/09/13 [11:23]

9월 9일 인천 부평역에 내려 광장에 도착하니 12시 20분이다. 젊은 청년 두 명의 기독교인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문구는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반대!, 남자가 여탕에 여자 화장실에!, 차별금지법 No’와 ‘동성애 옹호 가정파괴 교육파괴 여성역차별 표현의 자유억압 나쁜 차별금지법 절대 반대!’이다. 퀴어축제를 왜 반대하는지 물었더니,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남자가 여탕에 여자 화장실에 가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질병에 많이 걸린다”고 한다. 또 다른 여성 기독교인은 “원래 하나님은 남녀 간의 관계에서 생명의 잉태를 부여하였는데 성소수자들을 인정하면 기존의 가족이라는 틀이 깨진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성시화를 위한 9.9 인천범시민대회」라는 큰 현수막을 걸고 무대 설치를 하고 있었다. 주변의 현수막에는 ‘동성애는 인권이 아니다’라는 인천성시화운동본부에서 내건 현수막과 ‘언제까지 표현의 자유, 인권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 아이들을 울릴것인가? 그만하라!’는 문화보존협회에서 내건 현수막 등이 있었다. 부평구 기독교연합회의 2023년 인천퀴어반대 집회/ 인천 거룩한 방파제라는 집회이다. 부평역 북부광장, 교통공원, 부평공원 등에서 약 2,000명 인원동원, 재정동원의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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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평구 기독교연합회 퀴어축제반대 집회. 사진=구광숙 기자    

 

퀴어문화축제장을 찾아 나서는데 “주여! 주여!”라고 큰 소리로 기도하면서 동성애 반대 기독교의 집회가 시작됐다. 기도 소리를 뒤로하고 부평시장 가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경찰들이 도로를 에워싸고 있어서 축제장 입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2018년 인천 첫 퀴어문화축제 당시 기독교 단체와 보수 성향 시민단체가 반대 집회를 열면서 행사 참가자들과 물리적 충돌을 빚은 바가 있어서 이날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20개 기동중대 1,500명과 교통경찰관 160명을 현장 배치했다고 한다.

 

축제장 입구를 찾아 들어가니 40개가량의 부스가 있었고, 각 부스에는 홍보용 책자와 팜플렛, 체험 프로그램, 타로점 등 다양한 행사에 직접 참여하여 밝은 표정으로 즐기는 시민들이 많았다. 개신교와 천주교 부스가 보였다. 부평역의 개신교에서는 ‘퀴어 축제 반대’ 집회를 하는데, ‘퀴어 축제’를 인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말하자, 목사님께서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성경에 동성애 반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당시의 사회적 관계에서의 이야기이고, 지금의 사회와 다르다. 더 분석해 보면 꼭 동성애 반대 이야기도 아니다. 성경에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기독교인들이 돼지고기를 먹는데 거기에 대해서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경에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는 차별이 있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의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것처럼 사회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예수님이 지금 우리 사회에 오시면 성소수자들을 품을 것이다. 그리고 선택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다른 부스 구경을 했다. 무대 바로 가까이에 ‘성소수자 부모모임’ 부스가 있었다. 그 부스에 들르니 ‘너에게 가는 길’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꼭 보라고 권한다. 우문이지만 자녀가 성소수자가 된 이유를 물으니 한 부모님이 나보고 대뜸 “이성애자냐”고 묻는다. 질문에 마음이 상한 거 같아 좀 머뭇거리자 다른 한 부모님이 “성소수자가 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내가 상담심리학 전공 강사인데, 내 자녀가 성소수자라고 했을 때 많은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소용 없었다.” 동성이 이성보다 더 편해서 그런 거냐고 다시 물으니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축제에 참가한 젊은 여성들에게 물어보니, “동성을 대하는 편함보다는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이 행복하냐고 물으니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활짝 웃는다. 그러면서 부모님에게는 성소수자라는 것을 말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한테. 

 

짧지만 나눈 이야기에서 ‘성소수자’는 어떤 이론, 심리가 아니라 바로 삶의 문제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부스 체험 중 타로점을 봤다. 해석이 좋다. 부스 체험을 하는 중 오후 2시경부터 참여단체들한테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입장식 하라는 방송이 나오고, 40여개의 참여단체들이 입장하면서 제6회 인천퀴어문화축제를 시작했다. 사회자는 조서울(인천성소수자인권모임의 운영위원장이자 조직위 공동위원장)과 소주(올해 초 ‘동성부부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 고등법원 소송 승소’의 당사자)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 활동가가 공동 사회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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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축제 깃발 입장식. 사진=구광숙 기자    

 

 무대행사의 주요 내용은 인천을 대표하는 공동조직위원장들의 대회사, 주한 외국대사관(독일, 네덜란드, 캐나다, 아일랜드 대사관)을 비롯한 조직위에 참여하는 정당(노동당 인천시당, 인천 녹색당, 정의당 인천시당)의 축사, 서울, 대구, 춘천, 경남 퀴어문화축제의 연대사가 있었다. 또한 기본권 쟁취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 인천지역 연합 노동자 기타 노래패인 반격을 비롯 퀴어계의 아이돌 QIX, 그리고 퀴어공연과 인권 활동을 해온 드랙퀸 허리케인김치의 공연이 있었고, 축제의 마지막에는 2023년 2월에 작고하신 성소수자 인권에 연대해 주신 섬돌향린교회의 고 임보라 목사를 추도하는 ‘김하나’목사의 추모 발언이 있었다. 

 

개회식엔 ⯅이혜연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인화 민주노총 인천본부 위원장 ⯅박명숙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활동가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조정일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가 참석해 발언했다. 

 

박명숙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활동가는 개회사에서 ‘이번 축제 주제는 ‘차별을 넘어 퀴어해(海), 무지개 인천이다. 인천여성영화제에서 보여준 인천시의 성소수자 영화 사전 검열과 국내 곳곳에서 나타나는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차별 행정에 맞서 바다를 품은 인천을 모든 소수자가 함께하는 평등한 도시로 만들자는 의미다.’라고 했다. 그리고 조정일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는 ‘혐오와 차별이 없는 세상을 보러 나왔는데 혐오 세력이 혐오와 차별을 아주 강하게 보이고 있다며 혐오와 차별이 있어도 보란 듯이 멋진 축제를 진행하고 있는 참가자분들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각국 대사관 관계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다비드 비가 주한독일대사관 일등 서기관 ⯅톰 코픈 주한네덜란드대사관 정치 부문 서기관 ⯅알란 맥그리비 주한아일랜드대사관 부대사가 참석했다. 

 

다비드 비가 서기관은 ‘성 정체성으로 인해 차별과 증오가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만연해 있다. 그럼에도 여러분이 모여 아름다운 축제를 만들었다는 것에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일상이나 퀴어문화축제에서 힘차게 즐기는 여러분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다양성은 사회를 보다 자유롭고 다양하게 만든다. 다양성은 포용으로 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톰 코큰 네덜란드 서기관은 ‘네덜란드 정부와 대사관을 대표해 여러분의 온전한 모습 그대로를 응원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이 사회 곳곳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 대사관은 한국 어디에서든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면 참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란 맥그리비 부대사는 ‘어릴적만 해도 아일랜드는 성소수자를 범법적 존재로 규정했다. 하지만 여러 변화 끝에 세계 최초로 국민투표를 거쳐 동성애를 법제화했다. 아일랜드 정부와 사회는 꾸준하게 성소수자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 중이다. 성소수자 평등권을 이루기 위해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열린 제5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진행했다가 현재 2년 정직 징계를 받은 기독교대한감리교회 소속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는 ‘누가 교회에 차별할 권한을 줬는지 묻고 싶다. 이 문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집회 장소에서 출발해 부평시장역을 지나 농협 로터리를 거쳐 다시 부평역으로 2.9km 거리행진을 했다. 경찰추산 700명이 모였다. 행진 중 반대 집회 참가자인 50대 남성이 난입하여 집회 및 시위 방해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됐고, 반대 단체 회원이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한다’. ‘동성애 STOP’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 시위를 했으나 별다른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올해 축제는 당초 부평역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부평구가 기독교 단체에 부평역 광장 사용을 허가하면서 부평시장로터리 일대로 행사장이 변경됐다.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부평구청이 행정절차를 위반하여 부평구 기독교연합회의 광장 사용신청을 승인한 것에 대한 무효를 요구했으나 부평구청은 이를 거절했다. 그래서 조직위는 8월 28일 부평구청의 위법적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소송을 했다. 그러나 인천지방법원은 9월 8일 ‘신청인(조직위)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그 집행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조직위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9월 7일 진행된 심문기일에 부평구청은 ‘집행정지가 돼도 인천퀴어문화축제 광장 승인은 안 할 것’이라고 했다. 부평구 기독교연합회는 7월부터 9월 30일 3개월간 부평역 광장 사용신청을 했다. (7.15~16/ 7.23/ 7.30/ 8.5~6/ 8.13/ 8.19~20/ 8.25~27/ 9.2~3/ 9.9~10/ 9.17/ 9.30) 그러나 9월 2일 조직위가 확인해 본 결과 실제 광장을 사용한 행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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