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이 요르단과의 준결승에서 졸전 끝에 패하며 탈락했습니다. 클린스만 감독의 지도역량 부재, 감독 선임 절차와 내부반대를 무시한채 감독을 앉힌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독단이 도마에 오르는 모양새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용산에 있는 효창운동장입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언론에서는 너나없이 '64년만의 우승도전'이라는 수식을 내걸었습니다. 1960년에 열린 대회에서 우승한 후 지금껏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64년 전 아시안컵 축구대회가 열린 곳이 지금의 효창운동장이었습니다.
운동장과 효창공원이 함께 있습니다.
공원에는 김구,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 등 손에 꼽히는 이들의 묘역이 한데 자리해 있고요.
왜일까요? 이곳이 해방 후 처음으로 조성한 순국선열(삼의사) 묘역이기 때문입니다. 1946년 7월이었습니다.
효창공원은 광복의 환희 속에 독립국가의 정통을 담아 조성한 첫 번째 공간이라는 아주 중요한 상징을 품은 곳입니다.
독립운동가 묘역이 탐탁지 않았던 친일부역자들의 불편한 심기는 묘역 바로 앞에 운동장이 자리한 배경일 겁니다.
효창운동장은 서울특별시립으로 지어졌고 이를 관철한 이는 임흥순 제 9대 서울시장입니다. 명백히 권력형 친일을 했던 자입니다.
해방정국 이래로 독립운동가들이 그렇게 스러져 가지 않았다면 반민족행위자가 독립운동가 묘역 앞에 운동장을 지을 수나 있었을까요?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한 영광과 효창공원 독립운동가 묘역을 폄훼하기 위해 지었다는 어둠이 효창운동장 입지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효창운동장 우승 후 반세기 넘도록 대회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하자 대한축구협회는 1960년 당시의 대회 메달을 새롭게 제작해 출전 선수의 가족들에게 증정하는 행사를 갖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아시안컵의 저주'를 풀어야 우승할 수 있다면서요. 너무나 아쉽게, 이번에도 한국축구는 이 저주를 풀지 못했네요.
역대 최강이라는 화려한 선수단을, 내부역량을 갖춰도 이를 운용하는 지도자가 무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여실히 드러난 대회였습니다.
지금껏 대표팀과 감독에 대한 비판은 늘 있었지만 이번 준결승 후에는 축구계 안팎의 거의 모두가 아주 심각히 문제를 제기합니다.
근본적인 변화없이는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분노가 넘실댑니다.
다음 아시안컵은 2027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립니다. 그때가 되면 '67년만의 우승 도전'이라는 수식이 언론을 채우겠네요. 이번 준결승전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국축구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고 그때는 꼭 '아시안컵의 저주'가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날이 오면 '독립운동가 묘역 앞 효창운동장 입지'라는 사회갈등을 풀어낼 해결방안도 마련돼 있길 함께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