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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나를 죽였다

아리셀 공장 화재로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신경현 | 기사입력 2024/08/09 [11:22]

너희가 나를 죽였다

아리셀 공장 화재로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신경현 | 입력 : 2024/08/09 [11:22]

지난 8월 8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49재를 앞두고 서울 노동자시민이 함께하는 추모제가 진행됐다.

 

아래는 추모제에서 발표된 신경현 시인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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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었다. 경기도 화성시 전곡일반산업단지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시커멓게 그을린 고통을 붙잡고 6월 24일 오전 10시 30분 죽었다 

몇 일 전까지 살아있었던 나는 중국에서 라오스에서 한국에서 온 

가난의 이력은 달랐으나 배고픔의 깊이는 똑같았던 파견노동자였다 

누군가의 아내였고 누군가의 누나였고 누군가의 딸이었고 남편이었던 나는 

매일 아침 고단한 뒷모습으로 파견된 공장으로 가기 위해 통근 버스를 기다렸다 

이 공장, 저 공장 파견업체의 명령에 따라 일하면서 상품으로만 존재했던 

일이 끝나고 더 이상 쓸 일이 없으면 가차 없이 버려지고 말았던 내게 

비상 상황에 무엇이 위험한지 어디에 안전 창구가 있는지 알려주는 이 하나 없었다

15초 만에 온 공장에 불이 났던 그날, 비상구를 찾다 매케한 연기와 불길에 쓰려져 

팔다리가 찢어지고 머리가 몸통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알았다 

불법 파견노동자였으며 이주 노동자였던 내게 허락된 비상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폐허처럼 버려져 깜깜한 슬픔의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는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으나 

끝끝내 대답하지 못하고 꺽꺾 울 수 밖에 없었다 

 

어둠을 틈타 장례식장에 찾아온 아리셀 사장은 사과 한마디 없이 고개만 숙였고 

한국 정부는 전수 조사를 통한 파견노동자의 실태 파악은 불가능하단 말만 했다 

뜨거운 고통의 화탕지옥 벼랑으로 내몬자, 누구인가 

순식간에 가족들과 애끓는 이별의 나락으로 끌어당긴 자, 누구인가 

이윤에 눈이 멀어 불법파견을 확대 조장하고 중대 재해의 심각성을 숨기기 바빴던 

대한민국 정부와 원청 아리셀과 파견업체 메이셀 자본이 나를 죽였다 

자본주의에 부역하며 사람의 슬픔과 고통과 눈물에서 너무 멀리 떠나 있던 너희가 

아파트 평수와 자동자 구입과 주식과 코인과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렸던 너희가 

적절한 양심과 적절한 교양을 걸친 채 자본주의 너머의 가능성을 단 한번도 꿈꾸지 않았던 너희가 

가끔 추모하고 가끔 분노하다 결국 변명으로 침묵했던 너희가 

나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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