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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의 추억과 현실, 그리고 민주주의

정해랑 | 기사입력 2024/10/23 [10:40]

노벨문학상의 추억과 현실, 그리고 민주주의

정해랑 | 입력 : 2024/10/2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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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온 나라가 난리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자신의 소감과 견해들을 여기저기서 밝히고 있다. 대다수 국민이 기뻐하지만 불편한 기색을 숨기기 어려운 이들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 중에는 노골적으로 부정적 견해를 제시한 작가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견해가 얼마나 하잘것없고, 해롭기까지 한 것인지는 금시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서 국력이 강화된 결과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그런 것과는 달리 개인의 성취로 보기도 한다. 한강 개인의 뛰어난 능력과 치열한 작가정신이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그의 성공은 개인의 성공이기 이전에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이 이룬 쾌거이고, 민주화투쟁이 없었다면 그의 문학적 성공 역시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 근대문학의 역사를 대체로 100년으로 이야기한다. 그 중 일제강점기를 제외하고, 특히 우리말로 교육을 받고, 우리글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지식층들, 특히 문학청년들에게 노벨문학상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우리는 왜 안 되는가 라는 자괴감도 함께 있었다. 그러다 197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 시인이 노벨문학상 후보가 되었는데, 우리 정부가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막으려고 로비를 벌였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는 당시 감옥에 있던 김지하 시인이었다. 1991년 이후의 그의 발언이나 정치적 행보 등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에 그는 국내외적으로 박정희 유신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쓴 ‘오적’ ‘비어’ 등의 담시를 비롯한 그의 시들은 내용만이 아니라 형식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었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은 박정희정권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방해하기 위한 로비를 했으리란 것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당시에는 그 공작에 나선 문인의 이름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었다. 정권의 방해 공작만이 아니라 문인을 탄압하는 나라에는 노벨문학상을 줄 수 없다는 내부 규정이 있다는 설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1980년대까지 노벨문학상과는 거리가 먼 나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가 노벨문학상과 거리가 먼 나라이었을 동안 이웃나라 일본은 일찍이 1968년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1994년에는 오에 겐자부로가 받았다. 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본이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 간다는 현실 인정과 함께 우리 문학이 세계화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 않나 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우리 문인들에 대한 노벨문학상 수상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다들 알다시피 고은 시인 같은 경우는 발표 직전에 기자들이 집 앞에서 진을 칠 정도로 거론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결국 못 받았고, 과거에 있었던 부적절한 행동이 알려지면서 다시는 거론되기 힘들게 되었다.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품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겠지만 그 동안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우리 문인이 없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왜 우리나라 문인들이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반드시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번역이 잘 안 되어서 세계적인 문학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는 평가가 많다. 어느 정도는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외지다고 할 수 있는 곳에서 그 나라의 토속 언어로 쓰인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경우도 있다. 물론 그들이 식민지국가였을 때 종주국이 유럽 국가여서 일찍이 외국어 번역으로 서구 세계에 알려졌다는 점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번역만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으로 보면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시각과 국제적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면서 이전에 수상 대상자로 거론되던 문인들과 한강 작가를 비교하기까지 한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매우 뛰어나고, 여러 가지 면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전에 거론되던 작가들이 그보다 못해서 지금까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었다는 논리는 성립되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되고 고통을 당한 노동자, 민중의 삶을 형상화하고, 남의 나라 민족해방전쟁에 용병으로 참가해서 본의 아니게 가해자가 되어야 했던 베트남전 참전, 독일 통일 이후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그 분단 모순의 폐해와 그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등을 형상화한 작품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 중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독재정권이나 그들의 지지기반이 된 세력들의 방해 때문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1980년대까지는 직접적인 방해였고, 그 뒤로는 여러 가지 직간접적인 방해 공작이 있었다. 한강 작가만 하더라도 그의 작품이 유해 작품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블랙리스트에 오르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1980년대까지 우리의 문학 교육은 국정교과서인 국어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로 한정되었다. 월북 또는 재북 문인들은 물론, 그 뒤 남쪽 사회에서 활동했던 문인들 중에서 문학 평론가들이 높게 평가하고, 문학청년들이 좋아하던 김수영, 신동엽 등의 시인들조차 학교 교육에서는 배제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 현실을 외면하는 문학이 순수문학이라는 희한한 타이틀로 국민들의 생각을 오도시켰다. 

 

이러한 문학 교육의 현실을 깨부순 것은 많은 문인들의 노력의 결과였지만 그 토대가 된 것은 민주화투쟁을 통해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진전이었다. 한때 이러한 진전을 다시 되돌리려고 하는 움직임이 블랙리스트 등을 통해 있었고, 지금도 또 다시 그러한 기도가 자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가운데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너무나 소중한 성과이다.

 

이제 노벨문학상이 단지 동경이 되던 시기는 추억으로 되었고, 우리나라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있다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민주주의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고, 민주주의의 퇴행은 노벨문학상 수상의 빛을 바래게 할 것이라는점이다.

 

순수문학이라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말로 현실을 외면하는 가치중립적인 문학이 마치 우리의 대표적인 문학인 것처럼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에 의해 그런 것이 키워지고, 현실을 반영하는 소설들이 기피 소설로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것은 문학교육에서도 언론 등을 통해서도 추진되어야 한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들의 배경이 된 5.18민중항쟁과 4.3항쟁 등에서도 보듯 그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단지 외면이 아니라 가해자의 편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학이 그런 도구로 쓰이지 않게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갖고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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