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갠다’
김쾌대 작가의 에세이 『비 온 뒤 갠다』를 11월 마지막 날에 다 읽을 수 있었다. 2024년이 가기 전에 풀어야 할 숙제를 한 것이다. 김쾌대 작가는 독서인문학 [금빛수다] 모임을 같이 하고 있다. 책은 봄에 샀다. 마음 한구석에 읽어야 한다는 의무가 늘 박혀 있었다. 이제 그 숙제를 한 것이며, 그 책에 대한 후기까지 쓰고 있다. 나는 독자의 몫을 하는 셈이다. 그렇게 내가 가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다. 아직 다른 한 권(용이림 작가의 <그대 등 뒤의 슬픔에게>)이 더 남아 있다.
김쾌대 작가의 세 번째 책이다. 2020년~2023년 상간에 쓴 글을 묶었다. 김 작가는 2023년 여름쯤 금빛수다 모임에 나오면서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2024년에는 금빛수다 모임의 총무를 맡아 수고해주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책 출간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김 작가는 이미 POD, 주문생산방식으로 책 내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글쓰기와 책 출간을 서로 응원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부분에 시 느낌의 짧은 글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살아온 삶의 과정과 경험에 있어서 차이는 있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고민과 애환은 크고 잔잔하게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건 지은이가 젊은 날 사업에 크게 실패하면서 겪어야만 했던 삶의 민낯이 있었기에 공감할 수 있는 인간애가 아닌가 싶다.
나락으로 떨어져 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휴머니즘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다. 어쩌면 훨씬 많을 것이다. 사회와 인간에 대해 원망과 분노, 미움과 증오가 쌓인다. 그만큼 악바리로,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철면피가 된다. 지은이는 다행히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을 중심에 놓는 작가로 나아갔다. 고맙고 포근하다.
‘비가 오지 않거나 개지 않으면 어떡하지?’
눈이 오고 나면 맑은 날이 있다. 비가 온 뒤에도 비가 그치는 날이 있다. 비, 눈이 계속 올 수는 없다. 문제는 사람이 사는 세상, 사회다. 사람 사는 세상은 자연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자기 위로와 위안, 희망의 착시가 일반적이지 않을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있던가? 가문과 지역을 골라서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지배와 부의 유무를 좇아서 태어난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 우리가 사는 삶의 99%는 운수에 의해 주어진다. 영어, 수학, 외우기, 논술 몇 자 더 적는다고 자기가 잘난 줄 아는 인간들은 어리석거나 야만의 법칙에 순응한 족속에 지나지 않는다. 돈과 권력의 지배를 당연하다고 여기는 자는 인간의 탈을 쓴 약육강식의 짐승,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동네도 비가 온 뒤에 개면 좋겠다. 비는 홍수가 되기도 하고, 가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심술을 부리지만 비는 맑은 하늘을 드러낸다. 비는 대부분 인간에게 이익과 풍요, 생명을 가져다준다. 사람 사는 동네도 나눔과 정, 사랑과 정의, 해방과 평등으로 맑은 날이 환하게 미소 짓기를 빌어 본다. 미소 위에 촉촉이 반짝이는 비가 맺히기를 소망한다.
‘책 속에서 만나는 장면들’
<세월호> 8년 전 일인데 그만두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생하게 사무치는 현재를··· 나는 지금도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그저 기억할 따름이다.
<경계성 발달장애> 이쪽으로 넘어오면 삶의 땅이고, 저쪽으로 쓰러지면 죽음의 낭떠러지··· 내가 붙잡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침수 재해> 엄청나게 비가 내렸고, 반지하 주택에서 발달장애 가족이 죽었다. 이 도시는 발달장애··· 비가 그쳐도 무지개는 반지하에는 뜨지 않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 누가 젊은이들을 탓하는가? 찬란한 슬픔의 역설이··· 떠난 자는 원통하고, 남은 자는 애통하다. 나는 그저 온통 슬프기만 하다.
<백반(白飯)이 아니라 백찬(百饌)> 내 시선은 흰 쌀밥이 아니라 곁에서 거들고 있는 여러 반찬으로 향한다. 내가 사랑하는 찬은 콩나물이다. 내세울 것 없는 무료한 일상을 지내며 눈곱만큼이라도 성장하겠다고 발버둥 치는 내 모습과 다를 바 없이 보이기 때문이다. 잘난 것 하는 없는 주제에 대가리는 왜 또 그렇게 꼿꼿하게 쳐들고 있는지··· 그 정신이 처연하게 심금을 울리곤 한다. 계란후라이는 태양처럼 밥상 위로 뜬다. 나는 ‘완숙’을 좋아하는데 너는 왜 ‘반숙’을 고집하느냐며 상대방을 비난하고 미워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해 본다. 백반은 서민들의 음식이다. 상위 포식자의 기름지고 풍성한 만찬은 아니지만 소박한 감사와 나눔의 정을 느끼게 된다. 둥그런 쟁반에 담겨 나올 때 정겹다. 한 사람의 식구도 차별당하지 않게 둥그런 두레 밥상을 내어주던 어머니의 추억이 담겨있다.
<교수형처럼 허공에 매달려 흔들리는 인생들이> 인천 송도에서 스물아홉의 젊은이가 49층 외벽 청소를 하다가 떨어져 죽었다. 이 사고에 앞서 구로에서도 23세의 청년이 군대 가기 전에 아르바이트 나왔다가 추락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두 사고 모두 안전 불감증, 안전 장비 미비에 따른 죽음이었다. 무정한 도시의 떨어지는 이파리처럼 죽은 자의 비명이 묻히고 있다. 이 시대의 광대가 되기로 작정한 글쟁이로서 도저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렇게라도 죽은 자의 넋을 기려보고자 한다.
<내 인생이 아직은 불어 터진 게 아니어서> 밖에서 사 먹었던 저녁 식사 비용을 줄여보겠다는 비장한(?) 심산에서 라면과 닭가슴살을 다량으로 주문했다. 1997년 IMF,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수액이 다 빠져 말라비틀어지기 일보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다. 수백억, 수천억을 해 먹었다는 우울한 기사가 판을 치고 있다. 몇백 원, 몇천 원이라도 아껴서 현재를 이겨내겠다는 사람에게 라면은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전투식량이다. 아직은 불어 터지지 않고 꼬들꼬들한 나와 당신의 인생을 위해 건배하자.
작가는 책을 내기 위해 고통스럽기까지 한 지난한 과정을 책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500여 곳의 출판사 문을 두드려 첫 번째 책이 나왔다. 두 번째는 1,000곳의 에세이 전문 출판사를 검색해 195곳에 메일을 발송했다. 그 과정에 ‘상당히 정중하고 의례적인 거절, 원고 파일을 검토했구나, 출간기획서와 작가 소개 정도를 훑어봤구나, 수신 자체가 없는 곳, 신조어로 읽.씹’ 등 그 과정을 통해 작가는 단단해지고 있었다.
비 오기 전에 비를 들어 보면 어떨까. 위선과 가식, 내로남불 진영의 벽을 모조리 쓸어 버리고 싶다. 옳고 그름은 내 편이냐 아니냐에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 계급·민족·분단 체제의 모순은 사라지고 그저 물고 빠는 진영의 핫바지를 모조리 쓸어버리고 싶다. 사회 구조와 제도의 구조적 모순은 진영의 주둥이에 묻혀버린 징글징글한 현실이다. 비가 필요하다.
‘다 다르다’라는 작가의 이해와 소통에 한발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빗물에 밀려 하수구에 처박히는 낙엽처럼, 군중의 휩쓸림에 우왕좌왕하는, 수준 낮은, 허접한 탐욕의 바람은 가뿐하게 치워버리자. 내가 서야 할 곳은 소외된 사람들이다. 인간애, 휴머니즘이다. 내 주변의 작가와 소통하고 이해의 지평을 넓혀보자.
최저임금에도 한참 부족한 작가는 소망이 있다. 다른 이들이 근로소득세를 내듯이 ‘글로소득세’를 낼 수 있는 작가의 소박한 꿈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기에 동병상련의 응원을 보낸다. <비 온 뒤 갠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에 따스한 바람이 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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