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갑작스런 비상계엄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첫째로 보인 반응은 대체로 당황스러움이었다. “갑자기 왜?” 윤석열의 설명에 납득하는 시민들은 거의 없었다. 모두들 명확히 알게 되었다. 윤석열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정해랑 시인의 시집(詩集) <멧돼지의 일장춘몽>은 윤석열의 비상식적 정신상태를 꾸준히 포착해 기록한 르포 같기도 하다.
총 열 세편으로 구성된 시집은 모두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에 멧돼지라 불리는 사나이가 있었더란다~”라는 시구로 시작한다.
이어서 모두가 직접 목격한 현실이지만 도저히 현실같지 않은 사건들을, 비상식이 상식이 되는 세상을 해학과 풍자의 체로 걸러 시에 담아냈다.
각 이야기는 멧돼지가 매 순간 벌여온 퇴행과 엽기를 차곡차곡 그려내고 있다. “맞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지”라며 황당해 하다가도 시 곳곳에 담긴 비유와 묘사는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게 만든다.
마치 과거에 저지른 바보 같은 일을 떠올리듯 헛웃음이 새어나온다면, 이는 읽는 이가 멧돼지의 행보를 매 순간 지켜보며 분노했단 의미가 아닐까?
시인은 말한다. “시가 슬픔을 달래고 분노를 노래하는 데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어떠한 음모와 탄압의 창도 막을 수 있습니다. 시는 어떠한 거짓과 탐욕의 방패도 뚫을 수 있습니다.” 해서 작품에 담긴 해학과 풍자는 시민들의 분노가 음모와 탄압의 창을 막고, 거짓과 탐욕의 방패를 뚫는 힘으로 전환되기 바라는 소망을 품고있다.
비상계엄 후 거리로 쏟아진 재치있는 깃발과 구호들, 응원봉을 들고 K팝 가요를 부르며 춤추는 모습들은 시인이 담아낸 해학, 풍자와 맥을 함께하고 있다. 상명하복 군인 신분이지만 부당한 명령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던 청년들에게, 여의도와 광화문 거리를 새로운 물결로 채운 청년들에게, 민주주의가 당연한 것이었던 이들에게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정말로 시집에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멧돼지의 행패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세상은 바뀌었는데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옛 세계에 빠져 산다면 이는 망상이고 일종의 병리적 증상이다. 수많은 피를 역사의 제단에 바쳐 이룩한 오늘 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군을 동원한 비상계엄으로 전복시킬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놀랍다.
이번 비상계엄은 군부독재 시대에 나고자라 군부의 습성이 몸에 밴 이들이, 이제는 생명력이 다한줄 모르고 아직도 지난날의 향수에 젖은 일부 극우세력을 등에 업고, 민주사회를 집어삼키려다 제대로 소화도 못시킨 멧돼지와 그 일당들이 요란스레 만들어낸 헛구역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난데없이 출몰해 여기저기 들이박으며 민주사회의 질서를 파괴한 멧돼지의 끝은 정해져 있다. 자주와 평화를 위한 긴 여정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은, 시인이 차곡차곡 담아낸 시를 방패와 창 삼아서, 멧돼지가 만든 폐허와 악취를 걷어내고 다함께 앞으로 나아갈 일이다. <저작권자 ⓒ 직접민주주의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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