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10여 년 간 거주해온 곳은 차분하고 나무와 꽃으로 가득한 ‘숲마을’이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마을의 경관 가치는 크게 훼손되었으며, 인심은 매우 요란하고 시끄러웠다. 마을 사람들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작은 전쟁을 치뤘기 때문이다. 입주자 대표 회장과 회장을 옹호하는 그룹. 그리고 회장의 비리를 문제 제기하고 바로잡으려는 그룹 간의 소요였다. 그전에도 크고 작은 비리가 있었던 것으로 회자되지만, 이번에 쟁점이 된 것은 그 양상이 더 노골적이다. 거두어들인 장기수선충당금 중 3억 2천 만 원이 도색 작업 비용과 조경 비용으로 쓰여졌다. 그런데 이 과업 일부를 수행한 업체가 바로 입주자대표 회장이 등기이사로 있는 회사로 밝혀졌다. 감사 역할을 맡아온 분이 찾아낸 펙트다. 처음 논점은 회장의 자기 회사 수주라는 입찰 비리나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하는 행태가 아니었다. 마을 이름에는 ‘녹색’ 표현이 들어가 있는데, 도색은 엉뚱하게도 원색에 가까운 파란색으로 칠해졌으며, 그것도 한 가지 색만 쓰인 게 아니라, 회색, 베이지색, 검은색, 빨간색(지붕)으로 구성되어, 결과적으로 정체성을 상실한 누더기 마을이 됐다. 건물의 색상도 경제적 가치를 구성하지만, 실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매일매일 접하는 심미적 정서적 가치가 더욱 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주민의 향유권이 철저히 무시됐다.
조경 문제는 더욱 심했다. 조경을 모르는 일반인일지라도 그것이 잘된 조경인지 부적절한 조경인지 알 수 있다. 일반인의 보편적 정서와 판단을 무시한 조경은 전문기술도 아니며 학문도 아니다. 무엇보다 나무를 송두리째 댕강댕강 잘라내는 것이 조경의 기술이라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 나무는 금방금방 자라는 것이므로 이 정도는 잘라내야 한다는 설명으로 마을에서 벌어진 참상을 헤아려줄 수준이 아니었다. 잔잔한 서정을 주던 나무들이 하나같이 처참하게 유린당했다. 조경(학)이 무에 그리 대단한 논리와 철학에 기반하기에 주민의 미적 감수성과 나무를 대하는 식물윤리를 이리도 철저히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20년 이상 자란 수십 그루의 나무들이 힘없이 죽어버렸다. 증거 인멸도 있었다. 그렇게 고사된 나무들은 주민들 모르게 야밤이나 새벽에 작업되어 베어져 나갔다. 그러나 차마 파내지 못한 뿌리턱은 비참한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다시 돌아온 올해 봄. 그나마 견뎌내는가 했던 나무 20그루 내외가 또 다시 말라 죽었다는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수의 거주민 몇 분들을 제외하고, 280여 세대 주민 대다수는 침묵했다. 물론 나서지 않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제에 생활도 잔뜩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 생존의 문제가 더 다급한 때문일 것이다. 나서봐야 스트레스와 상처만 받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풍토에 정나미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무작정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여하간에 소수의 주민들이나마 시간과 기회비용을 소모해가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서로가 서로를 못 믿어 녹취하는 분위기도 횡횡했다. 회장을 옹호하는 이들로부터 거친 욕과 고성이 난무했다. 조용한 마을을 왜 분란을 일으키느냐며 오히려 문제가 있는 주민인냥 취급 받았다. 이 와중에 규약에 어긋나게 현 부녀회장이 회장과 부부 사이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문제 해결에 전문적이지 않은 소수 주민의 미력함 때문인지 비상대책위 구성은 유보되고 지연당했다. 그렇게 시간끌기로 일관한 회장의 임기는 ‘원만히’ 채워져 갔으며 재선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모든 비리와 부적절한 관리행정이 흐려지게 될 것이 자명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매년 봄마다 베란다 밖을 가득 채워주던 목련나무가 몸통만 남기고 중가지 조차 잘려나간 터였다. 민사소송, 형사고발, 방송 보도, 감사청구, 세무조사 의뢰, 관리사무소 회계 감사, 마을 대자보, 명예 훼손죄, 모욕죄, 증거인멸죄 등 모든 부분이 검토되었다. 그 와중에 초지일관 회장 역성을 들던 관리사무소 소장이 어쩐 일인지 사직을 하고 떠났다. 마을 주민 모두가 이 실상을 제대로 설명듣고, 당사자의 해명도 듣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주민총회를 소집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그 즈음하여 입주자대표 회장이 손해배상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간의 심미적 가치 상실 분, 인멸된 나무들의 가치는 고려되지 못하고, 그저 최근에 죽은 나무 20여 그루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겠다는 취지였다. 상실된 가치는 나무를 잘 모르는 이가 봐도 1억 원 가치는 족히 되어 보였으나, 500만 원 정도의 수준에서 나무를 다시 심는 것으로 잠정적 합의가 되었다. 주민들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문제제기를 해왔던 주민들은 지쳐 있었고, 그나마 그 입장을 받아들여 다시 고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런데, 입주자대표 회장은 그 손해배상액마저도 아끼고 싶었던 모양이다. 본인의 업체가 다시 직접 식목하겠다고 고집하고 나섰다. 나무 단가를 낮추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생각이 노회한 듯 했지만, 회장은 오랜 사업을 통해 오히려 노련한 대처력이 있었다. 상황으로 보아 숙이고 굽혀야 할 타이밍임을 직감했을 터이지만, 적절히 그 부담을 최소화 시키는 방법까지 계산하고 있었다.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 이익을 따지지 않는 사람들, 교양과 상식이 있는 사람들, 공사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들, 위선이 없는 사람들, 권세나 감투와 허영을 지향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지난한 분투는 스트레스이며 부담이며 상처다. 이와 같은 사례는 비단 마을 한 곳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에 걸쳐 빈번하게 반복되고 있다. 이제라도 마을 주민 모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고, 책임감을 분담하는 구조로 가야할 것이다. 마을 주민 다수가 직접 주요 논의 과정에 참여하고, 충분한 의견 개진 속에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동대표 등 대의제 방식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공동주택관리법은 다시 한번 전부 개정되어야 한다. 300세대 이하 마을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대표가 간선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직선한 회장이 마을행정을 책임지게 하고, 캐비넷 등 운영진 구성에 맡기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부차적이지만, 관리사무소가 아니라 생활지원실로 명칭도 바뀌어야 한다. 경비원에게 갑질 하는 것은 당연히 막아야할 일이지만, 권력화되고 불친절하고 비리와 결탁한 관리실 직원들의 행태도 함께 혁신되어야 한다. 내용을 알 수 없는 몇 줄 종이로 게재되지 않고 모든 안건이 세대주에게 문자로 메일로 SNS로 사전사후 공유되어야 한다. 모든 회의도 웨비나 등 화상회의로 실시간 방청할 수 있어야 한다. 동대표 등 임원이 아닌 주민일지라도 좀 더 실질적으로 정보 열람권과 의견 개진권 정도는 보장되어야 한다. ‘공동주택관리법’의 근본적 개정과 더불어 마을 직접민주주의, 아파트 민주주의, 마을공동체정신, 마을공화국을 다시금 재정립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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