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민시선] 국책연구원이 '마을자치정부, 직접민주주의'에 뜻을 둔 까닭은?한국행정연구원, 11월 24일~27일까지 3일간 17개 주제 51명의 ‘직접민주주의, 마을자치정부’ 전문가들과 워크숍 진행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80년대 말에 나온 영화중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란 영화가 있다. 배용균 감독이 거의 혼자의 기획으로 만든, 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다. 그 제목의 뜻은 알 듯 모를 듯 선문답으로 남겨져 있지만, 문명사와 불교사를 보다보면 달마가 동쪽으로 간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선문답과 같은 난해한 뜻이 있었다기 보다는, 갈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기원전 6세기에 고타마 싯다르타의 출현으로 시작된 불교는 계급사회의 지배논리를 옹호하던 브라만교를 비판하면서 만인의 평등과 자유를 이야기하는 지금으로서도 혁명적이고 혁신적인 사유였다. 기원전 3세기에 아소카대왕의 대대적인 진흥정책으로 인도 전역에 퍼져나가고, 기원전후를 즈음해서는 인도대륙 밖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대그리스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이미 경험했고, 로마공화정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지중해 문명은 인도문명보다 문화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불교의 혁신적인 사유도 서쪽으로 진출하기는 어려웠다. 반면에 한제국의 멸망 후 삼국시대와 위진남북조의 혼란상을 보이던 중국에는 문화적 우위를 보이며 유교, 도교와 함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듯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는 문화의 자연스런 이전이라 볼 수 있다. 마을자치정부와 직접민주주의 활동 중심에 두고 있는 사회운동가들에게 한국행정연구원이 ‘마을과 직접민주주의’를 중심에 둔 워크샵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듣고 의문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의 이슈인 직접민주주의와 마을자치정부를 국책연구기관 한국행정연구원은 무슨 생각으로 다루려고 할까 개인적으로 워크샵에 참여하면서 문득 30년 전의 그 영화제목이 떠올랐다. 지난 11월 24일~27일까지 3일간 17개 주제 51명의 ‘마을자치정부, 직접민주주의’에 뜻을 둔 전국의 전문가들이 한국행정연구원에 모여 마을공화국과 직접민주주의를 현재와 미래를 두고 각자의 전문적인 활동을 공유하고, 미래 비전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의 이름은 ‘공공리더십 교육 및 전문가 워크숍’ 스위스의 성공과 미국의 실패 첫날 첫 번째 발제를 한 안성호 한국행정연구원장의 이야기를 통해 연구원이 가진 문제 의식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스위스 직접민주주의 전문가인 안 원장은 오늘날 대표적인 강소국이 된 스위스의 번영과 힘은 코뮨(마을)자치에 있다고 보며,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도 마을자치, 풀뿌리민주주의를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건국초기에 민주주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은 유럽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타운미팅’, 즉 마을민주주의에 있었으며, 루이스 멈포드의 말을 빌려 “미국 건국자들이 타운미팅을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흡수하지 못한 것은 혁명 이후 정치발전의 비극적 실패를 초래한 중대한 실책”으로 보았다. 안 원장은 미국의 트럼프 현상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의 민주주의가 급속하게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타운미팅과 같은 직접민주주의 요소가 주정부나 연방정부에 반영되지 않는 탓으로 분석했다. 첫날 두 번째 발표는 서울에서 민관협력 방식의 마을공동체 사업을 이끈 경험이 있는 유창복 미래자치분권연구소장의 이야기로 시작됐다. 유 소장은 고 박원순 시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마을공동체 사업의 어려움과 가능성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거쳐 지금은 마을에서 자치로 나가고 있는 단계임을 설명했다.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주민자치회는 마을민주주의 실험장이며, 주민이 주도하는 문제해결형의 ‘마을자치’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오후에는 전국에서 모인 각 분야의 마을전문가들이 모여 각자의 철학과 경험을 중심으로 발표하고 이후 과제를 모색했다. 마을철학 / 마을정치 / 마을경제 / 마을교육 / 마을의료 / 마을문화 / 마을복지 / 마을금융 / 마을미디어 / 에너지 / 식량 / 마을 의생활 / 마을 식생활 / 마을 주생활 / 마을재생 / 마을여성 / 마을청년 등 17개의 분야가 마을과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어떻게 씨줄과 날줄로 엮일 수 있는지 정보를 공유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모색했다. 이미 전국적으로 마을정부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이미 전국의 절반에 가까운 지방정부에서 마을공동체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와 지원센터를 만들었으며, 마을자치와 주민자치에서도 자치위원추첨제 도입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찾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중앙정부와 관료들은 지역과 주민들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넘겨줄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구한말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한국 사회가 북유럽이나 스위스 같은 선진적인 강소국이 될지, 중진국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할 지는 시민들의 민주주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의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장을 측정하는 국가행복도 조사를 보면 우리 사회는 기대수명과 1인당 GNP를 제외하고, 부정부패와 관용, 사회신뢰와 개개인들의 삶의 선택의 자유에서 보면 여전히 하위권을 면치 못해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이번 정부지만, 여전히 주목할 만한 사회 불평등 완화와 사회의 혁신적인 변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혁신적 시민사회가 주장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 마을자치정부’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행정연구원이 관심을 가지고 현장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으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어떤 혁신적인 방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지는 알 수 없다. 수 백 년의 관료주의와 중앙집권주의가 강한 한국사회는 여전히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하고, 정치적 상상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과 마음의 여유 또한 부족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교가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마을자치정부와 직접민주주의는 전개는 시대적 요청으로 보인다. 한결 높아진 시민들의 정치의식과 시공간을 넘나드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결정을 보다 용이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완고하게 구시대의 질서를 지키려는 이들도 있어, 한 동안의 새로운 질서와 만들려는 이들과 구질서를 지키려는 이들의 각축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우리사회가 시대적 요청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다면 구한말의 역사를 되풀이하면서 시련과 고통의 근현대 100년이 되풀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지난 100년간의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비교적 성공적으로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성취해왔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이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중진국의 덫에 빠진 것처럼, 우리 사회도 이미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지배는 100년처럼 제국주의 무력과 식민지 지배방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정교해지고 새롭게 생활세계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중국이 문화적인 열세를 딛고 불교 수입 5백년 만에 당나라에서 세계 최고의 문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문화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와 자국의 토양에 맞게 현실화한 적극적인 노력 때문이었다. 또한 구마리집과 현장 등과 같은 걸출한 승려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관행에 익숙하고 변화에 더딘 집단으로 생각했던 국책연구기관이 우리사회의 혁신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려는 자세만으로도 3일간 참여했던 50여명의 사회혁신 전문가들은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저작권자 ⓒ 직접민주주의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