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엘리트와 서울공화국, 새로운 사회는 가능할까?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온갖 국정농단이 일어났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촛불시민항쟁을 시작했다. 2016~7년 한 겨울 추위 속에서 몇 개월 지속됐고, 마침내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켰다. 촛불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지만, 임기 말로 향해가는 지금 이렇다 할 사회경제적 혁신과 성과를 이루지 못해 민심은 점점 정부를 떠나고 있다. 비단 문재인 정부만이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도 시간과 기회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사회혁신은 이루지 못하고, 시장만능주의가 강화되면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힘들고 팍팍해졌다. 진보개혁정권 3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뭔가 제대로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과연 새로운 사회가 가능할까 라고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사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권력은 인적으로 1%도 되지 않는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고, 지역적으로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변화와 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 ‘우물에서 숭늉찾기’에 가까울 수도 있다. 행정수도를 서울에서 세종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관습헌법에 막혀 무산된 일은 서울공화국과 1% 엘리트공화국이 얼마나 강고한지를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에서는 그런 꿈이나 꾸어봤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그런 날선 뜻과 시도마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의 무력한 뜻과 태도를 비판하면서 1% 소수와 서울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고, 주민들의 권한과 책임을 회복하자는 근본적 차원의 시민운동이 시작됐다. 이름하여 ‘직접민주주의 마을공화국 전국민회’. 그 준비위원회 발족식이 3월 20일,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쳐지는 '양평 두물머리 생태학교'에서 열렸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이들을 초대하지는 않았지만,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가운데 새로운 마을공화국의 건설과 전국적인 조직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경향 각지의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지구로 상상하고, 국가로 기획하며, 마을로 행동하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행사 현수막. "지구로 상상하고, 국가로 기획하며, 마을로 행동하라!" 이 세 마디로 이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뜻은 충분히 보인다. 모든 일들이 전 세계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초연결의 시대에 지구적으로 상상할 수밖에 없으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국가를 염두에 두고 혁신기획에 나설 수밖에 없으며, 대안적인 모델은 마을과 지역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음을 세 마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사전 문화행사는 경기도 성남에서 튼튼한 주민공동체를 일군 이해학 목사의 강연으로 시작됐다. 70년대 청계천에서 터를 잡고 살던 이들이 청계천 개발로 광주로 반강제성 이주를 당하면서 일어났던 ‘광주대단지 사건’. 이들과 함께 주민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던 주민교회와 이해학 목사. 주민교회는 몇 해 전에도 ‘태평동락’이라는 주민주거공동체를 만들어 끊임없는 사회실험과 혁신을 계속하고 있다. 이해학 목사의 강연과 함께 유네스코등재운동을 벌이고 있는 윷놀이로 참여자들은 서로에 대한 환대와 우정으로 대회를 시작했다. 장소제공과 점심, 저녁을 준비한 '양평두물머리 생태학교'. 두물머리 일대는 수도권에 오염없는 수돗물을 제공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오랫동안 지역적인 피해를 감당해야했지만, 많은 환경규제 때문에 친환경 유기농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막개발로 수 십 년에 걸쳐 조성한 유기농 땅을 없애려고 하자, 마지막까지 유기농 땅을 사수하려고 항거했던 눈물과 한숨이 어린 땅 두물머리. 한국 사회의 지역을 들여다보면 이런 눈물과 한숨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주민들이 자기 땅에서 자의반, 타의반 쫓겨나고,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땅과 자본이 집중되는 해방 후 근대화 70여 년. 최근에 일어난 LH의 땅투기도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 깊고 오래된 역사의 말단임을 국민 대부분은 알고 있다. 팔당 두물머리에서 오랫동안 '생명운동'을 펼쳤고, 민회와 함께 더욱 심화시켜 보겠다는 김도경, 양홍관 부부와 함께 하는 이들이 유기농 비빔밥 등 준비에 많은 수고를 했다. 점심 식사이후에는 또랑광대 정대호의 '축원 비나리' 여는 소리를 시작으로 발족회의와 집담회가 시작되었다. 발족식에서는 임시의장을 맡은 양홍관 준비위원의 사회로 8월 15일 창립까지의 준비위원회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논의를 시작하자마자, 사상적인 논쟁이 시작됐다. ‘마을공화국’ ‘전국민회’에서 보이는 국가(國)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강호고수들의 논쟁이 시작됐다. 근대국가라는 것이 민초들에게 억압적인 역할을 많이 해왔던 만큼 국가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극복해야 해야 한다는 이상론과 그래도 국가라는 현실에 기반하면서 주민들의 자치권을 점점 강화해나가야 한다는 현실론 등등. 자칫 밤을 샐 수 있는 논쟁이 될 수도 있었지만, 창립총회 전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있는 만큼 깊이와 넓이를 가진 논의를 진행하기로 하고 규약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8월 15일 창립, 실질적인 자유와 해방의 새로운 사회를 목표로 다음은 창립총회 전까지 마중물의 머슴 역할을 할 준비위원장 선출. 위원장 선출을 두고 '추대제', '추첨제'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다른 회의에서라면 거론조차 되지 않았을 문제지만 마을공화국과 함께 직접민주주의를 두 축으로 하는 전국민회인 만큼 민주주의의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려고 했다. 추첨제를 제안했던 준비위원은 이후에 추첨제 논의를 보다 활성화시키는 것을 전제로 본인의 제안을 철회하고, 준비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임진철 주비위원장을 준비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임진철 준비위원장은 발족취지문과 올해의 사업계획을 설명했다. 우리 주민들이 여전히 자신의 대표를 뽑지 못하는 생활상의 식민상태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오는 8월 15일을 새롭게 해방하는 날로 삼고 이날을 전후해 1주일 간을 생활정치축제기간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또한 창립 때까지는 적어도 읍면동 씨알민회(기초조직), 시군구 지역민회(필요조직), 연대조직 50개소 이상을 만들자고 하면서 준비위원들이 자신이 사는 곳에서 지역모델을 만들어야만 전국민회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아울러 마을대학 교육플랫폼과 지역에 기반을 둔 마을대학 캠퍼스, 정책연구원, 마을돌봄뷔단 등을 구성하고, 직접민주주의뉴스, 마을앱 ‘하마’등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사회의 마중물을 만들어볼 것을 제안했다. 평생을 사회운동에 참여해 어느듯 여든살이 가까워진 이해학 목사는 격려사를 통해 “내가 만들고, 주도한다는 생각을 버림으로써 비로소 주민운동은 성공한다”는 울림이 있는 메세지를 던지면서 나를 버리면서 즐겁고 유쾌하게 주민들과 민회운동을 만들어갈 것을 제안했다. 행사의 피날레는 정대호, 지성철님의 검무와 샹송가수 출신 라보님의 신명나는 소리로 전국민회 발족식을 축하하고, 전남 순천에서 온 젊은 민회준비위원 장성해님과 부천의 심어진님이 발족취지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반나절의 행사는 마무리됐다. 이날 공식적인 첫발을 뗀 직접민주주의 마을공화국 전국민회가 애초에 뜻한 대로 순항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부패한 보수와 무늬만 진보의 모습을 한 ‘1% 귀족집단’의 과두체제에 대한 깊고 넓은 문제의식은 공유되고 있었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뜻은 강해보였다. 이들이 목표로 하는 실질적인 자유와 생활의 식민 상태를 극복하고 진짜 해방의 단초를 마련할 지는 앞으로 5개월 후 8월 15일이 되면 대략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직접민주주의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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