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고 있는 한국사회의 대학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지방대학이 문을 닫고 있다.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국가공동체가 책임지지 않고 시장에 맡겨 둔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사립대의 비율은 85.4%이며, 전체 학생의 78.8%가 사립대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OECD 주요국 교육지표를 보면 대부분 나라들의 국공립 대학 학생 비중이 70%이상이다. 독일은 95.9%가 국공립이며, 호주는 98%가 국공립대이며, 사립대학이 유명한 미국도 71.9%가 국공립대다. 주요 선진국치고 교육을 사립대학에 맡겨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말고는 없다. 그렇다고 사립대학이 교육기관으로서의 제 역할을 했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수시로 터져 나오는 사립대학의 부정과 비리로 많은 학생과 부모, 지역사회가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남쪽에서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고 해도 우리사회는 시큰둥하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밀착해서 제대로 된 역할을 했다면 적어도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교육을 보면, 19세기 교육관료 · 20세기 학교와 교사 · 21세기 학생들의 이미지를 떨칠 수가 없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 나이든 자는 나이 어린 자를 가르쳐야 하고, 가방끈이 긴 이는 짧은 이를 가르쳐야 한다는 관념이 강했다. 사서중의 하나인 대학(大學)에서 신민(新民)과 친민(親民) 논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글자는 글자 모양이 비슷해 고대에 어떤 글자를 사용했는지를 두고, 주희는 백성들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지만, 이에 반기를 든 왕양명은 이미 양지(良知)를 가진 백성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대학의 핵심이라고 했다. 불행히도 조선에서 왕양명의 친민은 한반도 내륙에는 들어오지 못한 채 강화도에 머물다 사라졌다. 주자학의 강한 영향 때문에 조선에서 백성은 일방적인 교육과 교화의 대상일 뿐, 나라의 주체는 될 수 없었다. 2019년 한국사회의 대학 진학율은 69.6%로 10년째 OECD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대학졸업장의 실효성이 사라지면서 정점을 차지했던 2005년의 82.1%에 비하면 많이 떨어진 셈이다. 그런데 과연 대학이 고등교육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을까 비싼 등록금만큼 제대로 된 값어치를 하고 있을까 OECD 평균 대학진학율은 41%이며, 교육강국인 독일은 30%도 채 되지 않는다. 언제가 교육세미나에서 독일인 교육학자가 던진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교육의 핵심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하고, 그 능력을 확장하는 데에 있다. 독일에서 중학교까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데만 집중하며, 고등학교부터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능력을 키우도록 한다. 한국의 교육은 아이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하는데 관심이 없고, 좋아하지도 않고 재능도 없는 것을 열심히만 하도록 하고 있는 것 같다” 불행히도 한국사회는 19세기 교육 관료들이, 20세기 학교에서,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은 무너져가고 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자말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으며, 교사들은 처삼촌 벌초하듯 아이들을 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교육개혁을 위해서는 교육부를 해체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21세기 지식정보사회와 마을대학 21세기가 지식정보사회라는 데는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다. 창의적이고, 공감적이고, 협력적인 한 사람이 어느 시대보다도 지구와 인류에게 유익한 가치를 생산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스웨덴의 툰베리를 보라! 2018년 툰베리는 15살에 지구환경의 위기를 느끼고 등교를 거부하면서 매주 금요일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15살 소녀의 과감한 주장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고, 2019년에는 타임지에서 올해의 인물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떠올랐다. 한국교육에서 그레타 툰베리가 나올 수 있을까 지금의 교육시스템으로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대학의 출발은 비리로 얼룩진 사립대학처럼 돈벌이 수단도 아니었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의 양성도 아니었다. 12~13세기부터 교양 있는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한 만들어진 대학은 선생과 학생들이 토론을 해가면서 진리에 접근하려는 지식과 지혜의 공동체였다. 교양인의 양성을 목적으로 했던 중세와는 달리, 근대로 접어들면서 전문인 양성으로 초점이 옮겨갔지만 대학은 자치와 자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전통이 강했다. 한국사회의 대학은 교양인 양성도 아닌, 전문인 양성도 아닌, 지역사회와는 유리된 채 죽음을 목전에 둔 몸통만 비대한 공룡과 닮아 있다. 모든 정보가 초스피드로 흐르고 공개된 21세기에 거대한 몸통만 가진 대학이 생존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대학이 생존을 위해서라도 기존의 관행과 관념을 과감히 바꾸어야 하지만 그럴 수 있는 대학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주민과 지역사회와 함께 마을대학을 상상하면서 지식과 지혜의 공동체를 새롭게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마을대학을 만드는 유쾌한 상상 !! 마을대학은 지역이나 마을 자체가 하나의 캠퍼스가 된다. 농촌의 마을은 너무 규모가 작으니 읍면동이나 시군구 정도가 하나의 캠퍼스가 되면 좋겠다. 당장에는 시군구가 하나의 캠퍼스가 되면 효율적인 측면이 많겠지만, 역량과 내실이 강화되면 읍면동이 적절하리라 본다. 그러면 대한민국에는 3500개의 자율적이고, 자치적인 캠퍼스가 생기는 셈이다. 캠퍼스라고 해서 굳이 건물이나 특별한 공간이 있을 필요가 없다. 주민자치센터나 경로당, 시민단체의 회의실이 하나의 교육장이 된다. 지역에는 공간이 많이 있지만, 복지부동의 관료주의 때문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주민자치센터의 넓은 교육장을 관리 인력을 채용해 24시간 운영할 수도 있으련만 공무원 퇴근 시간이 문 닫는 시간이다. 누가 교육자가 될 것인가 일단 문을 열면 지역에 있는 강호고수들이 등장할 것이라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몇 해 전에 종로에서 시범캠퍼스를 열었는데, 가장 인기 있는 학교는 수제도마를 만드는 과정이었고 몇 차례나 연속 강좌가 이어졌다. 그렇게 몇 해만 이어가면 수제도마, 목공의 명인들이 마을에서 등장할 것이다. 대학이 소멸의 길로 가는 것은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엘리트 먹물들이 습관처럼 입으로만 떠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뜻있는 이들이 마중물 노릇을 하는 일이다. 수레의 첫 바퀴를 돌리는 일이 수레를 움직이는 에너지의 절반이 드는 만큼 첫 바퀴를 움직이는 일은 힘든 노릇이다. 그래서 초기의 노력과 애정을 쏟아 붓는 이들에 지역캠퍼스 학장의 명예는 주어도 좋겠다. 그래도 마을대학의 생명력은 주민들과 함께 가는 일이기에 지역에서 지역민회, 교육민회가 중심이 돼서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초기에 뜻을 낸 설립자가 혼자서 운영한다면 지금의 사립대학처럼 금방 변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한 지역만으로는 힘을 가질 수 없을 것이기에 마을대학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교육장도, 교사와 학생도 이미 지역캠퍼스 안에 다 있으니 애써 새롭게 구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들을 연결하고 에너지를 북돋을 온라인 플랫폼이 필요하기에 십시일반 뜻과 돈을 모아 마을대학 교육플랫폼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러면 이들은 무엇을 할까 행정안전부에서는 지난 2010년부터 연간 수백억을 돈을 퍼부으면서 마을기업을 육성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제대로 된 마을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마을이 없는 상태에서 마을기업을 육성하려고 하니 제대로 될까 그래도 청맹과니 관료들은 습관처럼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다. 마을대학 안에 ‘마을기업가’학교가 만들어지면 1~2년짜리 정부프로젝트가 아니라, 수 십년 살아갈 마을의 꿈과 비전을 마련하면서 절실하게 필요한 일부터 기업화할 것이다. 마을정치학교는 스스로 민주주의도 하지 않으면서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여의도정당 대신에 마을에서 검증된 이들을 시의원으로, 읍면동장으로 내보낼 것이다. 한갓 꿈이 아니냐고 혼자서 꾸는 것은 꿈이지만, 여럿이 함께 꿈을 꾸면 바로 현실이 된다. 이미 마을대학을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으며 6월 25~26일에는 전국 워크샵이 열릴 예정이다. 또한 직접민주주의와 마을공화국이라는 2개의 기둥으로 마을대학을 지지하고 지원할 전국민회가 8월15일 창립한다. 왜 8·15인가 우리사회는 여전히 돈벌이만 아는 상인우파와 허위와 가식에 젖은 강남좌파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 8·15는 생활에서 혁명과 광복을 맞이하는 첫 해로, 출발은 마을대학의 교육혁명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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