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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시선] 4·1만우절, 거짓말 같은 세상을 기대하며

윤호창 편집인 | 기사입력 2022/04/01 [10:11]

[편집인의 시선] 4·1만우절, 거짓말 같은 세상을 기대하며

윤호창 편집인 | 입력 : 2022/04/01 [10:11]

T.S 엘리엇의 시 한편으로 4월은 잔인한 달이 되었지만, 4월은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달이다. 제주 4·3사건, 미완의 4·19혁명에다 4·16 세월호 참사 등 비극적 사건들이 유독 4월에 겹치면서 진달래 색깔만큼이나 아리고 시린 달이 됐다. 4.19혁명이 박정희의 쿠데타로 무너지자, 저항과 자유를 노래한 시인 김수영은 깊은 좌절에 빠졌다. 그는 ‘그 방을 생각하며’라는 시에서는 그때의 좌절을 이렇게 노래했다.

그 방을 생각하며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과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四肢)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

‘그 방을 생각하며’ / 김수영 [거대한 뿌리]

 

눈이 밝은 시인들은 60년대 내내 분노와 울분을 시와 술로 쏟아냈다. 그들의 시는 대개 분노와 울분, 저항과 좌절이 주된 정서를 이루었지만, 희망과 이상에 대한 노래도 잃지 않았다. 신동엽 시인이 꿈꾸었던 자유와 이상이 유럽에서 ‘68혁명’이란 이름으로 구체화 되고 있을 때, 시인은 68혁명의 소식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상사회의 단면을 그린 ‘산문시’를 남겼다. 하지만, 미처 출판을 보지도 못한 채 불의의 사고로 68년 그해 말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근래 주목을 받고 있는 김누리 교수는 한국사회가 오늘날과 같은 황폐한 현실에 직면한 것은 유럽의 68혁명과 같은 문화혁명을 경험해보지 못한 탓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치적, 형식적 민주주의는 87년체제를 통해 조금 경험했지만, 경제와 사회, 문화와 교육 등 생활의 제반 영역은 민주주의를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장 자크 루소는 대의민주주의는 가짜민주주의이고, 대의민주주의 아래서는 선거날 하루만 자유로울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 프랑스 공화국을 제안했다. 프랑스 혁명가들은 루소의 생각을 프랑스에서 혁명을 통해 구현하려고 했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스위스에서 그 결실을 맺도록 했다.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마을(게마인데)공화국을 만든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행복한 국가가 되었다. 최근 5년간은 북유럽의 핀란드가 행복순위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회역동성 측면에서는 스위스가 언제나 수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행복순위도 언제나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 있다. 유럽의 약소국이자, 빈국이었던 스위스가 강소국, 행복국가로 등장한 이면에서는 직접민주주의와 강한 자치분권의 마을공화국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판68과 지역민회·마을대학·지역정당

형식적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직접민주주의와 새로운 대안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양당이 정치를 독점하는 기존의 중앙정당 대신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지역정당을 만들려는 목소리가 그러하며, 기득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여의도 국회 대신에 자신들의 삶터와 일터에서 지역민회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그렇다. 또한 벚꽃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고 있는 사립대학 대신에 ‘마을이 곧 대학이다’라는 뜻으로 준비하고 있는 마을대학이 그렇다. 물론 4월의 새싹처럼 아직은 미미하고, 언제 뿌리 내릴지 모르지만 기대는 해볼만하다.

중세 유럽에서는 ‘바보축제’라는 전통이 있었다. 허위와 가식에 찌든 중세의 성직자들과 귀족을 이 축제기간 동안에 민중들이 성직자와 귀족의 가면을 쓰고 바보축제를 통해 마음껏 조롱하며 비웃었다. 모두가 바보가 된다는 4월 1일 ‘만우절’도 바보 전통과 관련이 있다. 농사를 짓던 유럽 민중들은 춘분을 새해로 생각하며 4월 1일까지 새해 축제를 즐겼지만, 그레고리력을 채택한 16세기의 샤를 9세는 1월 1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민중들은 여전히 4월 1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여기며 축제를 즐겼고, 이에 분노한 국왕은 4월 1일은 가짜 새해로 선포하고, 이 날은 경축하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처형했다. 그럼에도 민중들은 ‘모두가 모두에게 속는 바보날’로 만들며 수 백년의 유쾌하고 발랄한 전통을 만들었다.

4월 1일 만우절에 마을공화국TV를 개설했다. 마을에서 무슨 공화국이냐고  5천만의 나라에서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하겠냐고  신동엽 시인이 잠꼬대처럼 이야기했던 석양대통령은 우리에겐 여전히 까마득하지만, 스위스와 북유럽의 복지국가에서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3월 대선에서 여성혐오를 일으켰던 정치인이 당선됐지만, 5년째 행복국가 1위를 놓치지 않는 핀란드의 주요 5개정당의 당대표는 모두 여성이고 그중에 4명은 30대 여성이었다. 스위스에서는 대통령의 이름을 아는 이가 드물다고 한다.

만우절에 선보이는 마을공화국TV가 '거짓말 같은 세상'을 들려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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