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이 또 사고를 쳤다. 이번 것은 이전 것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형사고이다. 논리적으로는 일본의 식민지배 정당화와 과거사 청산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었고, 현실적으로는 일본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아 내지 못한 채 돈보다는 일제의 사죄를 요구하는 생존피해자들과 국민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아버린 것이었으며, 법적으로는 우리 대법원의 결정도 무시한 채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외국의 요구에 굴종하는 선례를 남겼다. 그것을 통해 이루려는 것이 한미일 동맹이라는 미명하에 일본군이 우리땅에 들어오게 될 가능성이 높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제 윤석열 정권의 몰역사적이고, 굴욕적이며, 탈법적인 행태 때문에 우리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사도 광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등 일본과 다투는 쟁점에서 수세적일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버렸다. 이렇게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를 합리화시켜 주고, 친일파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정권의 결정이 우리 현대사에서 처음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것만 보아도 이승만 정권의 반민특위 무력화,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정, 박근혜 정권의 이른바 위안부 합의 등이 그것들이었다.
이러한 정권들과 윤석열 정권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반민주적인 정권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친일적이고 반민족적인 정권은 항상 반민주적인 독재정권이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현대사에서 독재정권은 친일본색을 지닌 정권이다. 그들의 독재는 식민지지배의 부당함과 그에 영합한 친일파들의 죄과를 어떻게 해서든 국민들이 인식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자행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친일 잔재의 청산과 식민지 지배의 부당함에 대해 사죄를 받으려면 먼저 우리 정부가 민주정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곧 민주 없이 자주는 없다는 말이 된다.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지 못하면 자주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역대 민주정부는 과연 자주적인 정부이었는가? 물론 아니다. 그러나 흔히 말하듯 그놈이 그놈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민주당 등 역대 민주정부를 담당했던 정당들에 할 수 있는 태도는 좀더 철저하게 자주적이 되라는 것이어야 한다. 국힘당 등 수구냉전세력과 민주당을 동일시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으며, 민족자주와 민주주의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이 연대해야 하는 전략적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1980년대 정도까지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독립되었어도 경제적으로는 일본에 종속되었다는 평을 들었었다. 그러나 아베의 수출규제 등이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 채 끝난 것을 보아도 지금은 우리가 일본에 굴욕적인 협상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독재정부가 일본에 그토록 약한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일본에 굴종하기를 강력하게 원하는 미국의 압박 때문이다. 미국은 민주주의나 역사적 정의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압박할 수 있는 나라임을 우리는 현대사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들은, 군사반란을 통해 권력을 찬탈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신군부 독재세력을 미국이 물리쳐 주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항쟁진압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인정이었다. 그리고 이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을 미국에 초청하면서까지 지지 지원해주었다. 당시 시민학생 재야민주화운동세력 등은 미국의 독재정권 지원에 대한 강력한 항의를 표하였고, 미국은 한국 민주주의의 지원자가 아니라 독재정권의 옹호자이며 지원자라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권이 등장하면 첨예하게 대립하던 한일간의 쟁점에서 우리가 후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윤석열 집권 이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물론 윤석열 정권의 이번 강제동원 해결 방안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기는 하다. 그만큼 일본에 대한 굴종의 강도가 높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바로 미국의 압박이 있었다는 점은 이제는 일부러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보인다. 그만큼 미국의 윤석열 독재 정권에 대한 압박이 노골적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은 미국이 자신의 패권과 이익을 위해 초조한 위치에 서게 되었음을 뜻한다.
미국은 윤석열의 굴종적이고 매국적인 3.1절 기념사를 한 시간 만에 지지한다고 발표했고, 굴욕적인 강제동원 해결방안 발표에도 즉각 환영의 의사를 보냈다. 그러면서 윤석열을 국빈 방문으로 초청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인플레감축법, 반도체지원법 등에서 보듯 우리에게 경제적 압박을 가하면서 조금의 양보도 할 의사가 없다. 이러한 미국으로부터 자주화가 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자주 없이는 민주도 없다는 결론에 우리는 이르게 된다.
민주 없이 자주 없고, 자주 없이 민주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것을 단계적이나 병렬적인 과제로 이해하는 점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동전의 양측면과 같다. 민주주의가 이룩되는 날에 민족자주의 길도 열릴 것이요, 민족자주의 길이 열릴 때 민주주의도 활짝 꽃 피울 것이다. 미일 외세로부터 자주적이 되어야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 앞잡이로 견로지마를 다하고 있는 독재 정권을 끝장내고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이 바로 민족의 자주가 이루어지는 길이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의 사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