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눈이다 고향역 철길로 달려가던 눈 산을 내려오다 마주친 눈 가로등 아래 서서 올려다 보던 눈 돌아서 가는 너의 어깨에 쌓이던 눈 항상 소리 없이 왔다가 추억 하나 불현듯 재생시키는 나는 지금 암 병동 10층 커다란 창문 너머로 너를 보고 있다
이리저리 바람 부는대로 몸을 맡겼는데도 내려앉은 곳 어디나 평평하다 평생 몸을 맡겨본 기억을 더듬었으나 비굴하게 녹아내려 갓길로 밀려나버린 이미 눈이 아닌 눈 죽은 눈처럼 몸은 죽음으로 줄행랑을 치고 있었던 것 장성같이 몸을 지키고 있으리라 여겼던 대장(大腸) 소나 돼지처럼 석쇠 위에 굽히지도 못하고 이제는 잘려나가 섞여 퇴비도 안되는 산업폐기물이 되어 버렸을까 눈이 멈췄다 이제 밤이 오고 찬바람이 파도처럼 밀려 내려올 것이다 내가 살던 산을 고이 덮었을 눈은 바람에 몸을 떨며 오두막을 지켜낼 것이다 병동 휴게실 한쪽에 머리 흰 모녀가 앉는다 " 내가 돈과 권력을 모두 휘두르고 살았잖니 " 묻지도 않는 딸에게 눈오는 날 고백이라니 눈웃음이 났다 " 이젠 힘이 없어" 몸이 말하고 있었다 얼마 앉지도 못하고 일어서는 흰머리 모녀 엄마 팔짱낀 딸의 팔죽지로 하얀 날개가 돋아나고 있었다
2022. 12. 15.
손근희(전 의정부민주시민학교 회장, 경기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손근희 시인님 평온한 곳으로 가셨으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작권자 ⓒ 직접민주주의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