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가면 난로 위 냄비가 짭쪼름한 라면 냄새를 피어올렸다. 배고픈 청춘들은 라면에 소주를 더해 허기를 채우고 속을 달랬다. 조촐한 음식과 함께 이야기가 무르익으면 이내 조그만 잔치로 번졌다. 밤이 깊어가면 이곳이 책방인지 술집인지도 헷갈렸다. 그래도 누구 하나 개의치 않았다. 이제는 추억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책방, 춘천서림 이야기다.
‘춘천서림’은 오직 젊음 하나로 불의한 시대에 맞서던 강원대 학생들의 아지트였다. 지금처럼 소통이 쉽지 않았을 때, 청춘들은 으레 학교 후문에 자리한 사회과학서점 춘천서림에 모였다. 후문 안팎으로는 최루탄이 난무했고 자고 일어나면 아무개 아무개 선배가 끌려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986년 무렵이었다.
이 무렵 책방을 인수해 운영했던 나환목 씨는 연탄난로 옆 커다란 의자에 앉아 언제나 환한 미소로 학생들을 반겼다. 1956년생으로 당시 학생들보다 10살 내외 많은 형님 뻘이었다.
그의 의자 옆에는 늘 목발이 놓여있었다. 고향 경북 영주의 어느 야산에서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또래들과 뛰놀던 중 매립된 불발탄이 갑자기 폭발하며 허벅지 이하를 잃었고 평생 의족과 목발에 의존하며 살아야 했다. 1966년 초등학생 때 일이다. 중학교 졸업 이후는 학업마저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춘천서림을 운영하며 학생들과 대화하고 스스로 공부하며 삶을 깨우친 현명한 이였다. 춘천과 연을 맺은건 요리를 했던 친형이 춘천에 정착하면서부터였다.
학생들이 책방에서 책을 사면 그는 늘 예쁜 표지로 책을 싸주었다. 경찰의 불심검문이나 다른이의 눈길끄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불온서적을 갖고만 있어도 경찰이 학생들을 연행해 가곤 했다. 시대가 이러하니 경찰들은 수시로 춘천서림을 드나들며 불법적 압수수색을 해댔고 책을 가져가며 영업을 방해했다.
하지만 불편한 다리도, 경찰의 방해도 그의 책방운영 의지를 꺾지 못했다. 불의한 시대에 맞선 청춘들처럼 두발로 직접 뛰어다니진 못해도 한 마음으로 운동에 힘을 보탰다. 춘천서림에서 그는 누구보다도 높고 빠르게 뛸 수 있었다. 불의한 독재정권은 장애를 넘어 그를 자유로이 날게 하는 맞바람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세월이 흐른 뒤에도 춘천서림을 다시 열고 싶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꺼내곤 했다. 하지만 일반서점도 경영이 쉽지 않다는 주변의 현실적 반응은 그를 좌절시켰다. 그러던 2021년, 갑상선암을 진단 받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방을 다시 열고 싶다는 그의 의지는 더욱 절박해졌다. 어쩌면 집착에 가까웠다.
1998년 춘천서림이 문을 닫은 후 불편한 몸에도 다른 장애인들의 자립과 자활을 도우며 지낸 그였다.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게 만든 육체적 고통보다 삶의 찬란했던 시절을 함께한 이들과 자주 어울리지 못하는 고립감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의 갑작스런 병환을 접하고 강원민주재단은 희망나누기 ‘몸이 아픈 본인’에 그를 추천했다. ‘춘천서림’과 ‘나환목’이라는 이름은 강원대학교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앞서서 시위를 주도하면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했다. 이에 순서를 정해 시위를 이끌었는데 ‘동을 뜬다’고 표현했다. 동을 뜨기로 한 선배 학번들은 엉겨 붙은 고민과 걱정,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한 채 춘천서림 골방에 숨어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춘천서림 골방은 그들의 고뇌를 결단으로 승화시키는 곳이었다. 선배가 책방에 며칠째 있음을 확인하면 다른 학생들은 ‘이번에 집회가 열리는구나’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이 일을 치르고 감옥에 가면 그는 구속된 이들에게 영치금을 넣어 주는 등 옥바라지를 했고, 잡히지 않아 수배명단에 이름을 올리면 빠듯한 형편에도 쌈짓돈을 모아 학생들의 주머니에 넣어주며 도피 생활을 도왔다.
희망나누기 선정 사실을 전해 들은 그는 너무나 좋아했다. 병마와 싸우는데 필요한 지원금도 그렇지만 젊은 시절을 함께했던 이들이 여전히 그와 함께한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겐 가장 큰 감격이었다.
감사와 함께, 주변의 동지들에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치료에 전념하겠단 의지를 거듭 전했다. 하지만 몸 속의 병마는 이미 커질대로 커진 뒤였다. 희망나누기 선정 후 두 달만에 그는 환한 얼굴과 웃음을 남긴채 우리 곁을 떠났다. <저작권자 ⓒ 직접민주주의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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