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악의 평범성, 범죄의 평범성

강현만 시인의 [따따부따]

강현만 시인 | 기사입력 2024/12/18 [10:55]

악의 평범성, 범죄의 평범성

강현만 시인의 [따따부따]

강현만 시인 | 입력 : 2024/12/18 [10:55]

  12.3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그리고 국민의 저항과 투쟁이 이어졌다. 국회의 탄핵 통과를 외치는 여의도의 바람은 매서웠다. 자본과 권력이 하늘거리는 동네는 유난히 춥다. 셀 수 없는 별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여의도역, 국회의사당역은 무정차 통과가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자연스러웠다. 

 

 

 

   거리, 광장, 주변의 빌딩, 상점 모든 곳에 축제를 즐기는 듯한 사람들로 꽉 찼다. 탄핵이 부결되는 날도, 통과된 날도 전철역 몇 정류장을 걸어야 했고, 마포대교를 걸어야 했다. 부결된 날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랐다. 통과된 날은 차가운 강바람에 몸을 자연스럽게 맡겼다. 

 

   골목 하나에 피세일(유인물 배포)을 위해 몇 차례 답사하고, 그 짧은 시간에 후다닥 유인물을 뿌리고 나면 우리는 승리한 사람이 되었었다. 뒤풀이 자리는 승전가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각자의 얼굴에는 흥분과 무사히 이루었음에 안도가 넘쳤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도로는 스크럼을 짜는 대열로 금세 북새통을 이루었다. 짱돌과 화염병, 유인물이 거리에 뿌려졌다. ‘가투’라 불리는 투쟁은 진압군(경찰)에 금방 깨지곤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각종 응원 봉과 축제 같은 노래로 여의도는 가득 채워졌다. 흥겨운 율동과 리듬은 그만큼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었다. 그 속에 나는 조금은 어색하고, 멈칫거리는 음색과 율동으로 하나 되는 모양이 되었다. 

 

   약관 스무 살의 나이에 결단해야 했던 나의 삶은 이제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이미 오래전에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거나 위치에 있기는 했었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1차였고, 통합진보당의 소요가 2차였다. 

 

   앳되고 어려 보이는 MZ세대이지만, 이들에게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시대의 수레를 끌어가고 있었다. 섣부른 속단과 가르치려는 태도와 야단은 AI 인공지능·4차산업혁명 시대로 무장한 MZ세대를 모르는 별나라 노인들의 남의 다리 긁기다. 

 

   물러날 때와 나이 듦의 적절한 역할을 가지는 것 또한 아름다운 늙음이고 퇴장이지 싶다. 온갖 것 만들어서 ‘장’ 자리는 다 차지하려고 하는 꼬락서니는 말고 말이다. 

 

   ‘기득권 범죄의 평범성’

 

   12월 16일 월요일 조국이 의왕교도소에 구속되었다. 지지자들의 눈물과 환호 속에 조국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소된 지 5년 만이다. 죄목은 입시 비리, 감찰 무마, 청탁금지법 위반 등이다.

 

   우스갯소리로 독립운동 죄목도 아니다. 자주, 민주, 통일, 노동, 계급해방 투쟁도 아니다. 입시 비리, 감찰 무마, 청탁금지법 위반 등은 자본과 권력을 가진 기득권 집단의 자연스러운 행동거지였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조국의 이 행위를 옹호하는 자들은 윤석열과 검찰 독재의 피해자를 앞세운다. 심지어 당시에 인턴증명서는 유행이었다며 범죄로 처벌할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거나 영향을 끼치는 사람의 수준이다. 소위 말하는 인플루언서, 셀럽의 민낯이 이런 형편이다. 

 

   자본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일상,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고 일반화한다. 기소 5년도 법의 특권이다. 1, 2심 실형 불구속도 특권이다. 엄마찬스, 아빠찬스가 뭔지도 모르는 서민들에게는 그저 눈먼 나라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진영 논리가 만드는 몰염치’

 

   한국 사회는 ‘빠’와 ‘좀비’ 문화 시대를 지나고 있다. ‘빠’와 ‘좀비’는 진영을 구축한다. 구축한 진영에 진영 논리는 판을 친다. 그 속에 옳고 그름은 없다. 그저 그때그때 내 편을 위한 악다구니와 그럴싸한 이론이 전부다. 

 

   ‘빠’와 ‘좀비’, 진영 논리는 상대를 악마화한다. 갈등과 대립을 부추긴다. 화해와 협력, 이해와 교류, 평화 속에 ‘빠’와 ‘좀비’, 진영 논리가 설 자리는 어렵다. 

 

   차마 사람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극우 유튜버(나팔수)들이 있다. 전광훈, 신해식 등 그 동네 대장 노릇을 하면서 돈을 번다. 그 비슷한 진영으로 유시민, 김어준 같은 자들이 있다. 역시나 돈을 번다. 대장 나팔수 밑에는 똘마니 나팔수들이 줄을 서서 나팔을 분다. 떡고물을 챙긴다. 

 

   이들에게 작용하는 힘은 ‘진영’이다. 내 편이면 무조건 옹호하고 본다. 그래야 계속해서 진영의 나팔수로서 대장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 이런 것은 필요 없다. 국회의원들까지 이런 대장 나팔수에게 얼굴을 내밀고 싶어서 안달이다. 이미 권력이 된 나팔수들이다. 가짜뉴스, 아무 말이나 지껄인다.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면 세상이 모두 진리로 보일 수 있다. 뽕에 취하면 달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손가락이 전부다. 

 

   내 편이라도 잘못은 비판받아야 한다. 자본과 권력의 한계를 가지는 부르주아지 법일지라도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그때그때 다르다면 누가 인정하겠는가? 그저 진영의 악다구니만 남지 않겠는가. 

 

   주먹을 흔들기 전에 염치를 갖자. 대한민국의 1%다. 권력의 최정점에서 비치는 시선은 기득권의 진영 논리가 아니라 도무지 아무것도 가진 것이라고는 없는 서민 대중의 일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뭔가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반성과 성찰 속에 그만 비켜서기를 바란다. “많이 먹었다. 아이가”

 

본문이미지

   사회 성격, 사회구성체 논쟁, 기본모순, 주요모순 등 계급적 역학 관계와 그에 따른 모순의 해결 방향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쩌다 ‘빠’와 ‘좀비’, 진영 논리만 횡횡하는 사회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 어떤 잘나고 똑똑하고 위대한 자도 그 시대를 뛰어넘지 못한다. 그 시대의 산물이다. ‘빠’와 ‘좀비’, 진영 논리를 확대재생산 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인물주의를 부추긴다. 그러한 인물주의, 영웅 사관은 지배계급의 부산물이다. 지배계급의 영속화를 꿈꾸는 자들은 인물주의, 영웅 사관으로 대중을 세뇌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하나같이 똑똑하고 잘났다. 이런 자들이 왜 그렇게 ‘빠’와 ‘좀비’, 진영 논리에 충실한 머슴이 되는지 신기할 뿐이다. 이제 지겨워질 헌법 1조를 내 것으로 하자. 내가 주인이고 내가 권력이고, 내가 통치와 정치의 주체다. 부르주아지 대의제는 이제 그만이다. 

   직접민주주의 시대다.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 국민투표제, 주민자치, 민회(시민의회), 마을공화국, 권력 분산, 주민 통치다. 시대와 민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민주시민이 되도록 노력하고 변화하자.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