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 주민자치는 결국 참여하는 이들의 행복을 위한 활동입니다.”오세범 서울시주민자치협의회 사무총장을 만나다<연재소개> 3.1민회는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월례포럼을 통해 주민자치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주민자치의 나아갈 길을 함께 모색하기 위해, 전국 마을 곳곳의 활동가 이야기를 듣고 담아내는 연속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전세계 많은 곳에서 주민자치를 하고 있어요. 한국의 주민자치는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전국 3500개 읍면동 중 31곳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했으니 이제 겨우 1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럼에도 작년기준 전국 1,300개 넘는 곳에서 주민자치회를 운영하고 있으니 엄청난 양적 성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세계에서 한국의 주민자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오세범 서울시주민자치협의회 사무총장(전 서울시 동작구 사당2동 주민자치회장)이 주민자치회의 지난 기간을 돌아본 소회다. ‘박람회나 심사평가 등에 가보면 주민자치위원들이 너무 재미있어 하고 똘똘 뭉쳐 함께하는 기쁨이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그는 주민자치 활동을 대학의 동아리에 비유했다. 학점에 도움도 안 되고, 돈도 들어 외부에서 보면 저걸 왜 하지 싶은 그런 활동, 하지만 한 번 맛보면 절대 돌아갈 수 없는 활동. 추위가 갑작스레 몰아닥친 11월 말 교대역 인근 그의 사무실에서 사당 2동 주민자치회 활동 경험을 듣고 주민자치회의 현재를 짚어 보았다.
주민자치회,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루는 2가지 축 중 하나
민주주의를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 ‘풀뿌리 민주주의’는 단순한 비유표현이 아니라 법적 개념을 갖춘 용어다. 통상 ‘지방자치제도’를 통해 구현되는데 이때 시군구의 장, 시군구의원을 직접 뽑는 단체자치, 그리고 주민자치로 구분할 수 있다.
두 가지 개념이 병립하는 이유로 오세범 사무총장은(이하 오 총장)은 “시군구청장 등을 선출만 하면 지방자치가 끝난 것이냐”라고 반문한다. 권력을 위임받은 이들의 활동만으로는 지역민 일상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힘들다. 때문에 ‘주민들의 의견이 일상적으로 반영되는 방법’으로서 주민자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서 주민자치는 단체자치의 ‘대체’가 아니라 ‘보완’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민주주의는 ‘효율성, 부국강병’ 같은 걸 위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민주주의를 왜 하는가 했을 때, 사실 민주주의하면 시끄럽습니다. 어떨때는 효율성도 떨어져요.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는 다른 어느 방법보다도 더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주민자치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고, 이는 곧 개개인의 행복을 위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과거 학생운동이 나라의 민주화, 노동운동이 직장의 민주화를 위해서였다면 주민자치는 ‘마을의 민주화운동’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파트 아파트, 자연스레 주민자치회로 이어진 마을활동
오 총장에 따르면 서울시 거주유형의 60%는 아파트며 그가 살고있는 사당2동은 평균보다 높은 80%에 육박한다. 어느 날 아파트 내 ‘입주자대표회의’ 모집공고를 접한 그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제대로 구현되면 아파트 내 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있겠다’고 보았다. 입주자 대표회의가 공동주택관리법에 명시돼 있고 자체 규약도 갖추는 등 운영 근거를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주민의 90% 가량은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그 외 10% 정도되는 주민들이 봉사하는 마음에 참여하지만 또 이 중 극히 일부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탐하고 이로 인해 마을 안에서 소송이 붙는 모습을 접할 때도 있었다. 아파트 유지보수 공사 등 비교적 큰 비용을 다루는 사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오 총장은 이러한 실상을 너머에서 접하다 직접 입주자대표회의에 참여해 첫 2년은 감사직을, 다음 2년은 회장직을 맡아 활동했다. 그러던 중 주민자치회의 전신인 ‘마을계획단’ 시범사업 공고를 우연히 접하게 된다.
‘우리 마을 문제를 함께 논의해 봅시다. 남녀노소 100명 모집’
공고 문구를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는 그는 ‘가슴이 뛰더라’고 당시를 생생히 설명했다. ‘사당2동 내에 어떤 분들이 살고있는지 더 많이 알고 싶었다’는 오 총장은 새로운 얼굴, 특히 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100명에 달하는 마을계획단 참여인원들은 취미, 관심사 별로 분과를 나누었고 그는 교육문화분과에서 활동했다. 마을계획단 활동은 자연스레 주민자치회까지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이제는 직접 만들어 나갈 때, 주민자치가 나아갈 길
그에 따르면 주민자치회는 시군구 사업이다 보니 지역 여건에 따라 퇴보했거나 지금도 꾸준히 활성화되는 등 편차가 크다고 한다. 자치구 자체 박람회를 개최한 금천구, 인천광역시 등을 주민자치회가 꾸준히 활성화 되고 있는 지역으로 꼽았다.
“그동안 지자체에서의 재정지원, 조례제정 등 행정, 법률 지원이 꾸준히 있었기 때문에 주민자치회가 단기간에 아주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온실 속 화초 같은 주민자치가 이어진 것이죠.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에 그러한 환경이 바뀌면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습니다. 온실이 없어지자 뿌리가 튼튼한 몇몇 곳을 제외한 많은 곳이 죽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 하에서 ‘’주민자치회법제화, 읍면동장 직선제, 시민의회. 지역정당운동 등 풀뿌리 민주주의를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논의되고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오 총장 역시 주민자치법제화전국네트워크를 통해 주민자치회 법률안 개정운동에 힘써왔다. 주민자치회 관련 법안 중 일부 내용이 애매하게 기술돼 있어 보완해야 할 점이 많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인데, 애초 생각한 것만큼 법안개정이 빠르게 이뤄지지 못해 관련 활동은 소강상태에 있다.
이같은 시도들과 관련해 그는 “경(鏡)이 2개면 세상이 경이롭게 보인다”는 문구를 소개하며 “주민자치가 이뤄지는 현장, 지금 여기를 구석구석 바라보는 현미경과 세계(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는 망원경을 모두 갖춰 풀뿌리 민주주의 활동을 가까이서, 또 멀리서 볼 수 있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아울러 “여러 주민자치 활동 중 일부에서 하향식, 중앙집중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주민자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모순이며 ‘하향식, 중앙집중 같은 단어와 주민자치’는 함께 어울릴 수 없다“고 개념을 명확히 했다.
“지난 10년 간 주민자치가 양적성장을 일궈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물었을 때,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유럽 등 많은 곳에서 주민자치를 하고 있고 따라가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그렇다고 우리나라 주민자치가 이대로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건 현장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은 주민자치회가 직접 길을 만들어야 가야하는 시점입니다.”
개인적 호기심으로 시작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부터 마을계획단, 사당2동 주민자치회 활동으로 맥을 이어온 그의 주민이 행복한 마을민주화 운동은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가고 있다. <저작권자 ⓒ 직접민주주의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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